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서양 조상을 섬기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서양의 신을 섬기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선지자님이나 하나님 세계와의 교통으로 하나님 세계를 증거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 받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성경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세계가 증거되는 동안에는 하나님 세계에서 동행을 하니 하나님 세계를 믿고 선지자님이나 하나님 세계와 교통하는 사람을 믿고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 세계로부터의 각종 응답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어떨까?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회개와 구원의 논리가 성경에만 있는 종교 교리로 아는 것이다. 회개와 구원은 사람 본연의 양심이고 감정이다. 단지 현실 세계의 모습에 의해서 잠시 잊혀지고 욕심과 교만함에 잠시 잊혀질 뿐이지 회개와 구원은 사람 본연의 양심이고 감정이다. 선지자님이나 하나님 세계와의 교통으로 하나님 세계를 증거하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눈에 눈 이에는 이란 말과 사랑과 용서란 말이 서로 상반된 것으로 아는 것이나 사람의 구원의 방법이 바뀐 것으로 아는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눈에 눈 이에는 이란 말과 사랑과 용서란 말은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범죄를 막기 위한 것이고 율법이나 규범이나 행동 수칙 등만으로 되지 않으니, 특히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 활동이 다양해지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용서란 말이 더욱 더 필요한 것일 뿐이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짐승의 피와 예수님의 피를 서로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짐승의 피와 사람의 피가,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되고 하나님 세계와의 동행으로 하나님 세계를 증거하고 그 사명을 감당한 사람의 피가, 하늘과 땅의 차이이겠지만 그 목적이 사람의 부족함과 범죄와 범죄에 대한 회개와 앞의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행위의 하나이다. 회개와 구원이란 수학 공식에 형식화 된 요즈음은 오히려 속죄 의식으로 짐승을 잡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볼모로 잡거나 희생양으로 삼기 보다는 오히려 짐승을 잡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십계명을 말을 하고 속죄 의식으로 짐승을 잡는 것을 말을 하면 유태교로 이해를 하고 회개와 구원, 사랑과 용서 등을 말을 하면 기독교로 이해를 하는 것이고 특히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점으로 구원의 방법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원의 방법은 바뀐 것이 없다. 사람이 하나님, 하늘, 하늘님, 신, 신령, 천지신명,,,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선행을 하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하고 범죄 하면 지옥에 가고 그렇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를 하면 천국에 가는 것이다. 짐승을 잡는 것(피)이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가 없고 단지 사람이 죄를 인식하고 뉘우치고 회개 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피를 흘린 것이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고 그러니 사람이 죄를 지으면 뉘우치고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사명을 행하다가 돌아가신 것을 의미할 뿐이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성경이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되어 있고 성경에 기록된 증거 행위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의 사람과 더불어 사람 속에서 나타나고 사람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이 언급이 되다 보니 하나님과 천사들을 사람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그리스도의 사명인 것을 현몽으로 알려 준 것도 천사님들이고 예수님과 동행을 한 것도 천사님들이고 예수님이 장사된 지 사흘만에 무덤가에 나타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 준 것도 천사님들이었고 하나님과 천사님들에 대해서 빛이란 말도 언급이 되고 말씀이란 말도 언급이 되었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할 때도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하듯이 사람과 하나님이나 천사님들은 본질적으로 존재론적으로 다르고 창세 이전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이 세상의 물질과 공간의 벽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있고 사람에게 나타날 때만 그 나타나는 방식에 따라서 비로소 사람이 인지를 할 수가 있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 예수님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사람의 육체가 부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경에서도 사람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말을 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지식으로도 사람의 육체는 흙을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령, 영, 하나님의 영, 천사, 신으로 잉태되고 살아 생전에도 성령, 영, 하나님의 영, 천사, 신과의 동행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불치병을 치료 하고 앉은뱅이의 골격과 근육에 영향을 미쳐 치료를 했듯이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성령, 영, 하나님의 영, 천사, 신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임하듯이 그리스도 예수님과 동행을 한 성령, 영, 하나님의 영, 천사, 신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입체의 환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그 결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의 사명을 증거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사람의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사후 세계로 간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영혼과 육체로 된 사람에 대해서 항상 사람의 시각에 보이는 사람의 육체에 대해서 사람이란 말을 하다 보니 사람의 영혼의 부활에 대한 것도, 또는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육체로부터 벗어나 사람의 영혼의 세계로 가는 것도, 사람의 부활로 이야기가 되고 그 결과 사람의 육체로 그릇되게 이야기가 될 수 있어도 사람의 육체는 부활을 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또는 신의 세계, 즉 the world of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한 그릇된 이해 중의 하나가 Spirits as God or Angels이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에 고정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자유로이 움직이고 활동을 하듯이 Spirits as God or Angels도 광활한 우주 공간을 자유로이 움직이고 활동을 한다. 단지 이 세상의 사람과 교통이나 동행이 이루어지면 그 기간 동안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동행을 하거나 그 사람과의 예정된 시기와 장소에 나타날 뿐이다. 모세 오경 시대에 장막 등을 만든 것도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존재론적인 본질상 Spirits as God or Angels과 교통과 동행이 되는 사람 외에는 Spirits as God or Angels을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으니 상징적인 장소를 가진 것뿐이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알 수가 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기적을 나타날 때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과 기적의 결과 밖에 없다. Spirits as God or Angels의 기적이 나타날 때 바닷물이 일어선 것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사람이 살아 온 것과 죽은 자가 살아 난 것과 질병이 치료 된 것과 바람이 멈춘 것 외에 사람이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브라함에서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 '믿어라' '마음의 문을 열어라'를 외친 이유가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존재론적인 본질 자체가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므로 하나님과 천사님들과 직접적인 교통이나 동행이 되는 사람 외의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천사님들을 직접적으로 알기 힘들므로 하나님과 천사님들을 믿고 자신의 말을 믿어야 그 다음에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방식으로 무엇인가 말을 한 것인데, 즉 질병을 고치던 심령을 관찰하던 등의 능력을 나타낼 것이고 그것도 하나님과 천사님들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해가 없고 다른 사람의 믿음과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 상황과 필요에 다른 능력이 나타날 것인데, 하나님과 천사님들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 사람의 방식과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만 말을 하고자 하거나 사람과 사람이 팔씨름 하듯이 시비를 걸거나 다수가 에워싸고 공격을 하거나 심지어 다른 종교와 지식으로, 그것도 사람의 정신적인 육체적인 수도나 고행이나 수행의 결과로 도달하게 된 사람의 정신적인 영역으로, 말을 하고자 하면 하나님과 천사님들로서는 그 능력을 나타난 결과가 그릇된 이해와 믿음으로, 때로는 우상과 허상으로, 이어지니 그 능력을 나타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8-07-18

JUNGHEEDEUK, 정희득,

내 또래의 아이에게 나에 대한 말을 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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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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