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ke Story 2

http://bike.chosun.com/

인구에 비해서 땅이 좁긴 좁은 것도 문제일 것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위해서 좁은 국토에서 특히나 땅값이 걸어 다니기에도 무서운 지역에서 무작위로 도로를 넓힐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집중된 공간이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조금씩 넓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04/18/2007 19:48:32)

지형으로만 보고 말을 하자면 헬리콥터가 그렇듯이 바이크Bike 종류를 애용하기에는 좋은 공간일 것이다. 국토의 70%가 산악 지대인 것을 고려를 하고 그 산악 지대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험준한 산악 지대가 아닌 것을 고려를 하면 한반도의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기에는 좋은 점도 많을 것이고 특히 백두 대간을 비롯한 몇몇 곳들의 산맥들을 열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큰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크Bike의 메이저를 위해서, 바이크Bike의 메이저라는 허상과 허울을 위해서 누군가를, 누군가의 삶을, 아주 중요한 사실을, 특히나 인류사의 일을,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04/18/2007 19:50:27)

근래에 우후죽순처럼 쏟아 나는 기획물이나 계획물도 그 정도가 지나쳐 불감증에 걸린 듯한 모습도 문제이겠지만 거기에 무엇인가를 거는 것도 정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굳이 바이크Bike니 메이저Major니 마이너Minor니 할 것 없이 백두대간 뿐만 아니라 지방화와 더불어 나아가 남과 북의 관계에 따라 그리고 더 나아가 향후 대륙으로의 육로 개방과 해양으로의 해로 개방에 따라서 비록 작은 땅덩어리 한반도이지만 나름대로의 시장이 될 수도 있으니 대량의 물량 공세 보다는 장기적인 마케팅이나 판매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을 하다 보면 그렇게 구석진 산업 분야는 아니고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되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04/18/2007 19:53:00)

스쿠터, 어느별에서 왔니? 1/2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누군가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시대를 살아가며 굳이 스쿠터가 뭔지, 어디서 왔는지 필요 없으니까. 그러나 <스쿠터N스타일> 우리가 사랑해 마땅한 스쿠터와 그가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를 열광케 하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_김진태

수많은 군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스쿠타모타」! 스쿠터는 1912년 군용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니 예상보단 오래됐다. 오드리 햅번 여사님이 지금의 스칼랫 요한슨보다 어여쁘던 시절, 로마의 폭주로 문을 연 베스파가 시작일거라 생각했던 때에서 무려 40여년을 거스르고 있다. 햅번 누님의 ‘오빠 달려~’스타일의 고품격 우아한, 앙증맞아 깨물어 주고 싶은 스쿠터는 아니었지만. 스쿠타모타도 두발을 모으고 앉아 달리던 형태만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시작은 군용이다.
사실 누구였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으니까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작자미상이다. 군용으로 개발 되었던 것이니 대략 어떤 장군! 뭐 이런 식 아니었을까? 그러니 그냥 그렇다 치자. 1912년은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스 햄프턴을 출발해 대서양에 잠수 하였고, 중국은 청나라를 마감하고 중화민국으로 거듭났으며, 발칸반도에서는 발칸 전쟁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 있었다.
스쿠터의 탄생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 속에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절. 전쟁용품의 군수 시장에서 만이 병사들의 기동력을 올려 전투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도라 하여 모터사이클과는 또 다른 형태로 발달할 뿐이었다. 세간의 이목은 포드에서 대량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모델-T에 만 있었다. 당시까지의 마님들은 넓은 드레스를 끌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마차를 선호하였기에 철 마차의 매력 앞에 모터사이클과 스쿠터는 찬밥 이하였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장을 누볐던 스쿠타모타는 전쟁이 끝난 이후 비슷한 형태로 1921년 독일에서, 1925년 영국에서 제작되기 시작하며 많은, 수많은 군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 것이 일반인들도 탈 수 있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의 유럽, 특히 패전국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승용차 대용으로 이용하면서 부터다. 폐망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치마를 던지고 바지로 갈아입은 여성들과 그들을 삶의 전쟁터로 이동시키는 스쿠터가 담당했다.
베스파의 등장은 전쟁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나라들은 돈이 없었고, 값싼 이동수단을 필요로 하였고, 기름도 덜 먹어야만 했다. 어려운 시대는 서서히 문화가 되었고, 문화는 생산을 만들며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아이콘이 되어 갔다. 마차를 타야했던 여성들은 스쿠터와 함께 어느 순간 간소한 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철판을 두드려 만든 탈것은 진화를 거듭하며 작고 빨라져 갔다.

로마의 휴일에서 데이비드 배컴까지

영화 속의 오드리 햅번이 왕실을 탈출 로마의 휴가를 베스파로 즐기게 되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거대 미국의 자본에 의해 미국인에 보여 요량으로 만들어지던 영화는 오토바이 신이 없었다. 각본을 받아든 감독 윌리엄와일러는 로마의 모습에 감탄하였고 자동차로 담아내기엔 답답함을 느꼈다. 공주(영화 오드리의 이름) 자유 발랄함과 왕실을 탈출한 반항을 이끌어 내기에 자동차는 부족했다.

모터사이클이 뇌리를 스쳐갔다. 당시 반항과 자유의 상징은 누가 뭐라 해도 오토바이였기에 윌리엄은 즉석에서 대본을 수정 시켰다. 그레고리 팩의 라이딩 실력도 일품이었고 그에 맞춰 모터사이클도 공수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의상을 담당하던 에디스 하디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공주의 복장에 모터사이클은 맞지 않다고, 조그만 의자에 풍성한 드레스는 올라갈 없다며 이러한 설정은 왕실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대했다.
에디스 하디는 왕실의상의 전문가였기에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런 논쟁을 종식시킨것은 오드리였다. ‘제가 공주이죠? 왕실을 탈출할거라면 저는 활동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같아요. 극중의 앤은 말괄량이에 활달한 캐릭터잖아요!”모두들 손뼉을 쳤다. 그리고 베스파의 선택은 탁월했다. 라이딩 복장을 준비한 그레고리가 잠깐 끼어들기는 했지만 베스파는 트레비 분수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그리고 유명한 137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스페인 광장에 깜찍하게 등장하며 영화를 빛내는 훌륭한 조연이 되었다.

우연과 그리고 순간적인 기지로 영화에 등장하게 된 베스파는 이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고, 로마의 휴일 같은 사랑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의 애장품이 되어 갔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의 젊음은 당시의 스페인 광장 앞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을 먹고, 분수에 소원의 동전을 던지고, 그리고 스쿠터를 함께 타 사랑을 나누길 간절히 바란다. 그게 어떠한 스쿠터가 되든 사랑이 함께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같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배컴, 지네딘 지단, 미하엘 발락, 프랭크 람파드, 올리버 칸. 그리고, 그리고 등등. 지금이 월드컵을 마친 시점이 아니더라도 귀에 익고 낯익은 이름들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 이들도 스쿠터를 즐긴다. 어마어마한 몸값의 이들은 물론 모 스포츠브랜드의 광고 속 이미지를 위한 설정이었지만 실제로도 스쿠터를 즐기고 있다. 특히 배컴은 자동차 수집광이면서도 클래식 스쿠터의 매니아로 유명하다. 그가 보여준 연애 시절 빅토리아와의 스쿠터 데이트는 가장 최근 우리가 만날 수 있던 아름다운 로마의 휴일이 아니었을까?

2편에서 계속.

Scooter N Style 제공 www.scooternstyle.co.kr

스쿠터, 어느별에서 왔니? 2/2

일본에 떨어진 작은

바퀴의 지름이 보통의 바이크보다 작고 소형의 내연기관(50600cc) 좌석 아래에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보통의 복장으로 걸터앉아 운전할 있고, 여성이 타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장거리의 고속 주행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사용범위도 주로 시가지에서의 통근·통학·배달 근교에서의 가벼운 스포츠에 한정된다. 고성능보다도 경쾌함과 저가격에 특징이 있다.
4~50
년대. 세계는 전쟁의 후유증을 톡톡히 알아야 했다. 패전국들은 물론이었으나 승전보를 울린 유럽의 연합군 상황도 경제의 호황을 누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빠르게 소득수준을 끌어 올리며 경제를 회복해 갔다. 일본도 로마의 휴일과 같은 낭만은 없었지만 생산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은 빨라져갔다. 그러나 좁은 도로, 작은 동양인에게 커다란 트럭과 차량들은 일본 특유의 작은 경제를 이끄는데 버겁기만 했다. 작은 탈것. 누구나 열심히 있는 바지런한 탈것이 필요 했고 그에 부합한 것은 오토바이였다.

일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을 담아낸 혼다

혼다를 창업한 혼다 소이찌로의 기계와 엔진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1936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 직접 레이싱카를 제작하고, 50년대 초에는 영국으로 혼다의 직원 모두를 이끌고 레이스에 출전하였다. 그의 생각엔 항상 최고의 혼다라기보다는 최선의 혼다가 되기를 희망했다. 비싸고, 크고, 멋있는 탈것이 아닌 누구나 저렴하게 고장 나지 않으며 오래도록 있는 서민의 발이 필요함을 느꼈다.
좁은 골목을 내달릴 있으면서도 멀리까지 다녀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없는 살림을 쪼개 살아야하는 그들의 호주머니도 감안해야 됐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여 유명한 「수퍼커브」가 등장하게 되었다. 단기통의 작은 차체. 클러치를 조작할 필요 없이 기어를 바꿀 있는 시스템. 획기적이었다. 조용한 엔진은 기름 냄새만으로도 바람처럼 달려주었다
.
지금 혼다의 귀여운 커스텀 바이크로 일대 획을 그은 「몽키」도 커브의 엔진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후 90년대 한국 배달 문화를 바꾸게 대림의 「시티100」시리즈도 커브 계열의 엔진이라니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서민을 위한 바이크를 개발하게 혼다 소이찌로의 정신은 전후 세월 속에 일본의 발이 되었고 일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이 되어 세계를 조용히 잠식해갔다
.
급성장을 이룬 유럽과 서구지역이 60년대 바이크와 스쿠터를 등한시 하게 것도 혼다와 일제 바이크의 시장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70년대 불어 닥친 오일쇼크로 세계는 기름을 먹어치우는 차량과 오토바이 회사들을 도산의 길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상징 할리데이비슨이 나가떨어져 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쓰러져 갔다. , 혼다를 중심으로 일제 엔진들은 날개 돋친 팔려 나갔다
.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금 혼다 모터사이클의 마크는날개이다. 70 당시 좋았던 시절을 담고자 했던 내용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일본 속의 작은 로마를 심어온 야마하

일본 최초의 스쿠터는 후지 중공업에서 1947 제조한 「레빗」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차체에 낮은 출력으로 그리 오래가지 않고 쇠퇴하고 만다. 이후 스쿠터는 일본의 다리임을 자처하는 혼다와 야마하가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한다. 혼다가 특유의 철저함과 근면으로 이룬 오토바이를 만들어갔다면 야마하는 감성에 기반을 두는 제품을 창조하였다. 혼다가 창업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철저한 완벽성을 추구했다면 야마하는 사람들에게 쉬어갈 있는 여유를 선사할 알았다.

혼다가 1958년 수퍼커브를 발표하고 난 두 해 뒤인 1960년 야마하는 2인승스쿠터「SC-1」을 발표 하며 로마의 여유를 일본 속에 만들어 갔다. 야마하는 일본 최초로 오르간을 만든 악기 회사였다. 야마하 도라쿠스는 악기회사를 모체로 하여 모터사이클시장에 뛰어들었고, 회사명은 야마하라 하였다. 그래서 일까? 야마하의 모터사이클과 스쿠터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넘치고 있다. Touching Your Heart!
1970년대 초 50cc엔진을 장착한 「파솔」을 만들어 자전거 타는 여성들을 라이더로 끌어 들이기 시작했다. 여성들을 위한 스쿠터는 당시로도 파격이었고 지금도 당찬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충분히 즐겁고 감각적인 파솔은 출시당시의 무게가 50kg을 넘기지 않고 자전거보다 낮아 타기도 편했다. 널찍한 바구니가 앞 타이어 위에 설치됐고, 발을 놓을 수 있는 플로어는 평평하고 널찍해 치마를 입고도 타고 내리는데 지장이 없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파솔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를 하였으나 초창기의 모델만 하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일본에서 초기 모델은 복고풍의 스타일과 맞물리며 아직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스쿠터로 물꼬를 튼 야마하는 이후 혼다와 본격적으로 경쟁을 하며 사람들을 더욱 큰 즐거움 속으로 이끌고 갔다. 혼다의 디오가 그랬고, 야마하의 조그가 그랬다. 조커가 복고풍에 가세하자 비노가 클래식 스쿠터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어갔다.
마제스티로 250cc급 빅 스쿠터 시장을 개척하는가 하면 T-MAX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기계 속에 야마하만의 독특한 감성을 이입시키고 있다. 아직도 야마하의 악기가 그들이 만드는 모터사이클만큼 많은 나라에서 감성을 자극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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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e Stor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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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에 비해서 땅이 좁긴 좁은 것도 문제일 것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위해서 좁은 국토에서 특히나 땅값이 걸어 다니기에도 무서운 지역에서 무작위로 도로를 넓힐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집중된 공간이 지방으로 흩어지면서 조금씩 넓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04/18/2007 19:48:32)

지형으로만 보고 말을 하자면 헬리콥터가 그렇듯이 바이크Bike 종류를 애용하기에는 좋은 공간일 것이다. 국토의 70%가 산악 지대인 것을 고려를 하고 그 산악 지대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험준한 산악 지대가 아닌 것을 고려를 하면 한반도의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기에는 좋은 점도 많을 것이고 특히 백두 대간을 비롯한 몇몇 곳들의 산맥들을 열어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큰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크Bike의 메이저를 위해서, 바이크Bike의 메이저라는 허상과 허울을 위해서 누군가를, 누군가의 삶을, 아주 중요한 사실을, 특히나 인류사의 일을,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04/18/2007 19:50:27)

근래에 우후죽순처럼 쏟아 나는 기획물이나 계획물도 그 정도가 지나쳐 불감증에 걸린 듯한 모습도 문제이겠지만 거기에 무엇인가를 거는 것도 정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굳이 바이크Bike니 메이저Major니 마이너Minor니 할 것 없이 백두대간 뿐만 아니라 지방화와 더불어 나아가 남과 북의 관계에 따라 그리고 더 나아가 향후 대륙으로의 육로 개방과 해양으로의 해로 개방에 따라서 비록 작은 땅덩어리 한반도이지만 나름대로의 시장이 될 수도 있으니 대량의 물량 공세 보다는 장기적인 마케팅이나 판매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을 하다 보면 그렇게 구석진 산업 분야는 아니고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되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04/18/2007 19:53:00)

스쿠터, 어느별에서 왔니? 1/2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누군가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시대를 살아가며 굳이 스쿠터가 뭔지, 어디서 왔는지 필요 없으니까. 그러나 <스쿠터N스타일> 우리가 사랑해 마땅한 스쿠터와 그가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를 열광케 하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_김진태

수많은 군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스쿠타모타」! 스쿠터는 1912년 군용으로 개발되었다고 하니 예상보단 오래됐다. 오드리 햅번 여사님이 지금의 스칼랫 요한슨보다 어여쁘던 시절, 로마의 폭주로 문을 연 베스파가 시작일거라 생각했던 때에서 무려 40여년을 거스르고 있다. 햅번 누님의 ‘오빠 달려~’스타일의 고품격 우아한, 앙증맞아 깨물어 주고 싶은 스쿠터는 아니었지만. 스쿠타모타도 두발을 모으고 앉아 달리던 형태만은 틀림이 없었다. 물론, 시작은 군용이다.
사실 누구였는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으니까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작자미상이다. 군용으로 개발 되었던 것이니 대략 어떤 장군! 뭐 이런 식 아니었을까? 그러니 그냥 그렇다 치자. 1912년은 타이타닉호가 영국 사우스 햄프턴을 출발해 대서양에 잠수 하였고, 중국은 청나라를 마감하고 중화민국으로 거듭났으며, 발칸반도에서는 발칸 전쟁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에 있었다.
스쿠터의 탄생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 속에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시절. 전쟁용품의 군수 시장에서 만이 병사들의 기동력을 올려 전투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도라 하여 모터사이클과는 또 다른 형태로 발달할 뿐이었다. 세간의 이목은 포드에서 대량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모델-T에 만 있었다. 당시까지의 마님들은 넓은 드레스를 끌리지 않고 탈 수 있는 마차를 선호하였기에 철 마차의 매력 앞에 모터사이클과 스쿠터는 찬밥 이하였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장을 누볐던 스쿠타모타는 전쟁이 끝난 이후 비슷한 형태로 1921년 독일에서, 1925년 영국에서 제작되기 시작하며 많은, 수많은 군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 것이 일반인들도 탈 수 있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의 유럽, 특히 패전국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승용차 대용으로 이용하면서 부터다. 폐망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치마를 던지고 바지로 갈아입은 여성들과 그들을 삶의 전쟁터로 이동시키는 스쿠터가 담당했다.
베스파의 등장은 전쟁이라는 시대적인 배경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나라들은 돈이 없었고, 값싼 이동수단을 필요로 하였고, 기름도 덜 먹어야만 했다. 어려운 시대는 서서히 문화가 되었고, 문화는 생산을 만들며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아이콘이 되어 갔다. 마차를 타야했던 여성들은 스쿠터와 함께 어느 순간 간소한 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철판을 두드려 만든 탈것은 진화를 거듭하며 작고 빨라져 갔다.

로마의 휴일에서 데이비드 배컴까지

영화 속의 오드리 햅번이 왕실을 탈출 로마의 휴가를 베스파로 즐기게 되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거대 미국의 자본에 의해 미국인에 보여 요량으로 만들어지던 영화는 오토바이 신이 없었다. 각본을 받아든 감독 윌리엄와일러는 로마의 모습에 감탄하였고 자동차로 담아내기엔 답답함을 느꼈다. 공주(영화 오드리의 이름) 자유 발랄함과 왕실을 탈출한 반항을 이끌어 내기에 자동차는 부족했다.

모터사이클이 뇌리를 스쳐갔다. 당시 반항과 자유의 상징은 누가 뭐라 해도 오토바이였기에 윌리엄은 즉석에서 대본을 수정 시켰다. 그레고리 팩의 라이딩 실력도 일품이었고 그에 맞춰 모터사이클도 공수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의상을 담당하던 에디스 하디가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공주의 복장에 모터사이클은 맞지 않다고, 조그만 의자에 풍성한 드레스는 올라갈 없다며 이러한 설정은 왕실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대했다.
에디스 하디는 왕실의상의 전문가였기에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런 논쟁을 종식시킨것은 오드리였다. ‘제가 공주이죠? 왕실을 탈출할거라면 저는 활동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같아요. 극중의 앤은 말괄량이에 활달한 캐릭터잖아요!”모두들 손뼉을 쳤다. 그리고 베스파의 선택은 탁월했다. 라이딩 복장을 준비한 그레고리가 잠깐 끼어들기는 했지만 베스파는 트레비 분수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그리고 유명한 137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스페인 광장에 깜찍하게 등장하며 영화를 빛내는 훌륭한 조연이 되었다.

우연과 그리고 순간적인 기지로 영화에 등장하게 된 베스파는 이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고, 로마의 휴일 같은 사랑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의 애장품이 되어 갔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의 젊음은 당시의 스페인 광장 앞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을 먹고, 분수에 소원의 동전을 던지고, 그리고 스쿠터를 함께 타 사랑을 나누길 간절히 바란다. 그게 어떠한 스쿠터가 되든 사랑이 함께하는 곳이라면 언제든 같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배컴, 지네딘 지단, 미하엘 발락, 프랭크 람파드, 올리버 칸. 그리고, 그리고 등등. 지금이 월드컵을 마친 시점이 아니더라도 귀에 익고 낯익은 이름들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 이들도 스쿠터를 즐긴다. 어마어마한 몸값의 이들은 물론 모 스포츠브랜드의 광고 속 이미지를 위한 설정이었지만 실제로도 스쿠터를 즐기고 있다. 특히 배컴은 자동차 수집광이면서도 클래식 스쿠터의 매니아로 유명하다. 그가 보여준 연애 시절 빅토리아와의 스쿠터 데이트는 가장 최근 우리가 만날 수 있던 아름다운 로마의 휴일이 아니었을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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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어느별에서 왔니? 2/2

일본에 떨어진 작은

바퀴의 지름이 보통의 바이크보다 작고 소형의 내연기관(50600cc) 좌석 아래에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보통의 복장으로 걸터앉아 운전할 있고, 여성이 타기에도 편하다. 그러나 장거리의 고속 주행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고, 사용범위도 주로 시가지에서의 통근·통학·배달 근교에서의 가벼운 스포츠에 한정된다. 고성능보다도 경쾌함과 저가격에 특징이 있다.
4~50
년대. 세계는 전쟁의 후유증을 톡톡히 알아야 했다. 패전국들은 물론이었으나 승전보를 울린 유럽의 연합군 상황도 경제의 호황을 누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빠르게 소득수준을 끌어 올리며 경제를 회복해 갔다. 일본도 로마의 휴일과 같은 낭만은 없었지만 생산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은 빨라져갔다. 그러나 좁은 도로, 작은 동양인에게 커다란 트럭과 차량들은 일본 특유의 작은 경제를 이끄는데 버겁기만 했다. 작은 탈것. 누구나 열심히 있는 바지런한 탈것이 필요 했고 그에 부합한 것은 오토바이였다.

일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을 담아낸 혼다

혼다를 창업한 혼다 소이찌로의 기계와 엔진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1936 자동차 레이스를 위해 직접 레이싱카를 제작하고, 50년대 초에는 영국으로 혼다의 직원 모두를 이끌고 레이스에 출전하였다. 그의 생각엔 항상 최고의 혼다라기보다는 최선의 혼다가 되기를 희망했다. 비싸고, 크고, 멋있는 탈것이 아닌 누구나 저렴하게 고장 나지 않으며 오래도록 있는 서민의 발이 필요함을 느꼈다.
좁은 골목을 내달릴 있으면서도 멀리까지 다녀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없는 살림을 쪼개 살아야하는 그들의 호주머니도 감안해야 됐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여 유명한 「수퍼커브」가 등장하게 되었다. 단기통의 작은 차체. 클러치를 조작할 필요 없이 기어를 바꿀 있는 시스템. 획기적이었다. 조용한 엔진은 기름 냄새만으로도 바람처럼 달려주었다
.
지금 혼다의 귀여운 커스텀 바이크로 일대 획을 그은 「몽키」도 커브의 엔진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후 90년대 한국 배달 문화를 바꾸게 대림의 「시티100」시리즈도 커브 계열의 엔진이라니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서민을 위한 바이크를 개발하게 혼다 소이찌로의 정신은 전후 세월 속에 일본의 발이 되었고 일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이 되어 세계를 조용히 잠식해갔다
.
급성장을 이룬 유럽과 서구지역이 60년대 바이크와 스쿠터를 등한시 하게 것도 혼다와 일제 바이크의 시장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70년대 불어 닥친 오일쇼크로 세계는 기름을 먹어치우는 차량과 오토바이 회사들을 도산의 길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상징 할리데이비슨이 나가떨어져 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 했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쓰러져 갔다. , 혼다를 중심으로 일제 엔진들은 날개 돋친 팔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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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금 혼다 모터사이클의 마크는날개이다. 70 당시 좋았던 시절을 담고자 했던 내용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일본 속의 작은 로마를 심어온 야마하

일본 최초의 스쿠터는 후지 중공업에서 1947 제조한 「레빗」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차체에 낮은 출력으로 그리 오래가지 않고 쇠퇴하고 만다. 이후 스쿠터는 일본의 다리임을 자처하는 혼다와 야마하가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한다. 혼다가 특유의 철저함과 근면으로 이룬 오토바이를 만들어갔다면 야마하는 감성에 기반을 두는 제품을 창조하였다. 혼다가 창업자의 정신을 바탕으로 철저한 완벽성을 추구했다면 야마하는 사람들에게 쉬어갈 있는 여유를 선사할 알았다.

혼다가 1958년 수퍼커브를 발표하고 난 두 해 뒤인 1960년 야마하는 2인승스쿠터「SC-1」을 발표 하며 로마의 여유를 일본 속에 만들어 갔다. 야마하는 일본 최초로 오르간을 만든 악기 회사였다. 야마하 도라쿠스는 악기회사를 모체로 하여 모터사이클시장에 뛰어들었고, 회사명은 야마하라 하였다. 그래서 일까? 야마하의 모터사이클과 스쿠터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넘치고 있다. Touching Your Heart!
1970년대 초 50cc엔진을 장착한 「파솔」을 만들어 자전거 타는 여성들을 라이더로 끌어 들이기 시작했다. 여성들을 위한 스쿠터는 당시로도 파격이었고 지금도 당찬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충분히 즐겁고 감각적인 파솔은 출시당시의 무게가 50kg을 넘기지 않고 자전거보다 낮아 타기도 편했다. 널찍한 바구니가 앞 타이어 위에 설치됐고, 발을 놓을 수 있는 플로어는 평평하고 널찍해 치마를 입고도 타고 내리는데 지장이 없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파솔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를 하였으나 초창기의 모델만 하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일본에서 초기 모델은 복고풍의 스타일과 맞물리며 아직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스쿠터로 물꼬를 튼 야마하는 이후 혼다와 본격적으로 경쟁을 하며 사람들을 더욱 큰 즐거움 속으로 이끌고 갔다. 혼다의 디오가 그랬고, 야마하의 조그가 그랬다. 조커가 복고풍에 가세하자 비노가 클래식 스쿠터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어갔다.
마제스티로 250cc급 빅 스쿠터 시장을 개척하는가 하면 T-MAX로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기계 속에 야마하만의 독특한 감성을 이입시키고 있다. 아직도 야마하의 악기가 그들이 만드는 모터사이클만큼 많은 나라에서 감성을 자극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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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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