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홀, BLACK HALL,

20070804, 토요일,

오늘 오전은 화서동에 지난번처럼 누군가가 왔다 간 날이다. 누군가가 화서동에 다녀간 직후 내가 오늘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려고 하니 지난번처럼 소낙비가 퍼부어서 발길을 잠시 막는다. 지난 번의 경우와 너무나 동일한 자연 현상의 반복이다. 기상청의 일기 예보를 보고 내가 행동을 해도 기상 현상 자체가 그리고 시간 타이밍이 그렇게 동일하기는 정말 힘들 것이다. 기상청 웹사이트를 보니 오늘과 내일 오전까지 비가 내릴 확률이 오늘은 90퍼센트에서 내일은 60퍼센트까지로 적혀 있다.

잠시 후 집을 나와서, 화서역을 지나서, 화서역 옆의 논길을 따라 걸어서, 농어민신문사를 지나서, 농촌진흥청을 지나서, 서수원도서관까지 길을 재촉하니 더운 여름 날 비를 맞으며 걷기에 좋도록 비가 한 두 방울씩 내리다가 그친다. 더운 여름 날 더위를 식혀 주기에 정말 좋은 날씨이다. 서수원도서관의 디지털 자료실에서 오후 5시까지 문서 작성을 한 후 이발을 하기 위해서 수원 중부 경찰서가 있는 정자동까지 걸어가는 동안의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다. 한두 방울의 비가 꼭 물방울이 흩날리듯이 내린다. 정자동의 블루클럽에서 이발을 하고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한두 방울의 비가 꼭 물방울이 흩날리듯이 내린다. 아파트 단지 앞에 앉아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잠시 즐긴다. 정말 시원한 촉감이 느껴지는 바람이다.

황 박사 팀의 과학적인 발견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했다. 특히 우리가 우리인데 무엇인지 모를 우리 것 알기 시류를 타고 언론에서도 많이 회자가 되었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고 언론에서 보도가 되고 있는 사실을 볼 때 관련자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고 또 의심스럽게 보도가 되고 일 처리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과학적인 사실이면 과학적인 사실에 맞게, 과학의 윤리성에 맞게, 연구가 되고 보도가 되고 또 다수로부터의 의혹이 제기되면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서 모두가 이해를 할 수가 있고 인정을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단지 처녀 생식이니 배아줄기세포니 하는 말로서 CF를 촬영하고 영화를 촬영하듯이 그리고 패싸움 하고 구역 싸움 하듯이 그래서 세력으로 문제가 되는 있는 일의 결과를 결정지으려고 하는 듯이 일들이 진행이 된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주 중대한 과학적 사실이고, 또 사람에 대한 획기적인 사실이면, 과학자로서 전체 과정이 어느 누구나 납득을 할 수가 있게 진행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학문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에서 과학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여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언론에 발표가 되고 수사가 진행이 되는 과정이, 그래서 이곳 저곳에서 문제와 의혹이 제기 되고 제기된 문제와 의혹을 규명하고 대응하는 과정이, 마치 무엇인가 다른 것을 노리는 것이 있는 듯이 일들이 진행이 된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더 의혹을 가질 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인기를 얻고 메스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 주목을 끌고자 하는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 활동만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국민들로부터 위대한 과학자란 지지를 받아서 정치인이 되기 위한 작업이나 전략이나 전술도 아니고 범죄 조직에서 쇼를 벌여 사람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한탕 하기 위해서 작전을 짠 것도 아니고 등등 그러니 처녀 생식이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나 식견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는 황 박사팀의 과학적인 발견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서 서울대학교의 교수 또는 과학자로서 그것도 세계 12위의 경제 대학 대한민국에서 나타내 보일 모습은 아니었지 않는가 싶다.

비록 사람이 창조가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을 사람의 과학적인 지식으로 분류를 하면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동물에 속한다. 그래서 다른 동물과 생명체로서의 공통점이 많다. 처녀 생식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이상할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 새로울 것도 아니고 원형 동물에서 진화를 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아니고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동정녀 마리의 수태를 설명하는 것과는 일점 관련도 없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도 생명체적인 속성을 제외한 사람이란 속성에서 보면 공통점을 발견을 하는 것이 다른 점을 찾기 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성경(The Bible)에서 말을 하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임신 또는 수태도 이상할 것도 전혀 없는 것이 사람이 창조가 되었듯이, 또는 누군가가 말을 하고 싶어 하듯이 그냥 존재를 했다고 하더라도, 또는 자신의 기원을 원형 동물이나 짐승으로 생각 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말을 한 것처럼 진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특히 여자로서의, 임신 또는 수태 과정이 사람과 사람의 사랑에 바탕을 한 육체적인 성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지 성경(The Bible)에서 말을 하고 있는 영의 존재인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 또는 능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뿐이었으니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남녀의 육체적인 성 행위가 없이 단지 남성의 그것과 여성의 그것의 결합이 의학적인 능력만으로 가능하여 사람이란 생명체의 임신 또는 수태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고 과거에는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인 성 행위에 의해서 가능했던 사람이란 생명체의 임신 또는 수태 과정이 사람으로서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존재인, 특히 비록 영혼이 있다고 하지만 육체가 있는 사람과는 달리 영의 존재인,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 또는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다른 것뿐이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제로 영의 존재인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더구나 그런 사실 위에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영이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거하여 인류에게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에 대해서 각종 방법으로 증거를 한 것이니,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고 우리 것이란 말로서 전통이나 관습이란 말로서 적대적일 것도 분노를 할 일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 ‘처녀 생식’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이 진실이면 인간의 존재적인 기원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던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서 존엄성이 훼손이 되지 않게, 인권이 몰락하여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생체 실험의 도구와 같이 전락을 하지 않게, 필요에 따라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을 인위적으로 생산을 하지 않게, 사람과 사람의 이해관계 전쟁에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이 등장을 하게 되는 시대가 오지 않게,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한, 생명체에 대한,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를 하며 계속적인 연구에 종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언론으로만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계속적인 행위들이 세계적인 과학자로서의 모습이나 위상에 그렇게 걸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참고로, 사람의 과학 기술로 사람과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 이 세상에 어떤 단호한 법률이 존재를 해도 어디선가 과학 기술로 사람과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볼 때 99%로 이루어질 것이고 사람으로서는 사람인지, 모습만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인지, 쉽게 구분하기 힘든 그런 현상이 발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비극은 고스란히 사람의 몫이 될 것이고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영역에 도전을 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지적 호기심이나 호승심이나 허영심은 비록 충족이 될지 모르지만 그 결과가 가져올 참극은 어느 누구나 충분히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이다. 앞의 경우와 경우가 다르지만 지금 현재도 사람과 이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세계의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사람이란 존재로서 지극히 부분적으로 밖에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 마치 동·서양이 대립을 하듯이, 국수주의와 국제주의가 대립을 하듯이, 우리 것과 남의 것이 대립을 하듯이, 그 결과가 이웃이나 동료나 지인 사이에 이유도 없는 적대감을 내보이게 되는 일이 누구에 의해서 왜 발생하게 되는지 오히려 의아한 것이 현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특히 나와 관련된 어릴 때부터의 종교 현상, 생명의 창조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측면서 말을 하는 생명과학과 윤리 의식 및 의학과 윤리 의식 등에 대한 말들에 대한 공격의 말들로서 천지를 창조하라니 전지전능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니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라니 병원의 환자를 모두 치료를 하라니 자신의 외모를 성형 수술하듯이 새로이 고치라니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은 우리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즉 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성장을 한 지도 40년이 넘었고 내가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나타난 현상 및 내가 대한민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중 알게 된 지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니 우리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종교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 활동의 문제도 아니고 특히 사람과 사람에게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하고 사람과는 존재적 본질 자체가 다른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와의 대립의 문제도 아니고 단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것으로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공격을 할 때, 그것도 서로 간에 대화 한마디 없이 우리가 우리의 동료를 공격을 할 때, 주로 우리 것이니 애국 애족이니 전통이니 관습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을 하는 것을 보니, 특히 나의 어릴 때는 더더욱 그러한 현상이 심했던 것을 보니, 우리 것 애국 애족 전통 관습 등을 말을 하지만 말을 하는 목적이 전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에 현재 수 백 개가 넘는 성씨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기원을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반도에서 사람이 생존을 하기 시작한 것을 최소한 5 천 년 정도로 알고 있다. 그 기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지구상에서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가 존재를 하고 있다.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 기원을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생명체 자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지금 현재도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곤충이 떨어지고 있다.

Believable Or Unbelievable, 나의 고향의 나의 집의 장독대에서 아주 작은 실뱀이 하늘에 날아가기 시작한 후 점점 커지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현상이 보일 때가 있었다. 내가 본 것은 실뱀이고 그 다음은 능구렁이고 그 다음은 사람들 말로는 이무기나 용일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나의 고향 집의 장독대 부근이나 마당에서 전설 속의 이무기나 용이 나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니 누구도 속단을 할 수가 없었고 내가 전설 속의 이무기나 용을 본 일이 없으니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는 말만 말을 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고향 집의 장독대 부근에서 나의 고향에 존재를 하는 개구리와는 달리 이빨 가진 개구리(하마)가 점차 커지기 시작하면서 하얀 이빨이 나의 키만큼 커지고 코가 벌렁벌렁하고 눈이 왕방울처럼 꺼벙꺼벙 하고 벌린 입이 나를 삼키고 남을 정도로 커지더니 결국 몸이 터지고 살갗이 사방으로 튕기면서 죽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이 꽁(거짓)이 아니고 사실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살갗을 찾으려고 했으나 사방으로 튕겨진 살갗은 흔적도 없었다. 그 때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는 하마가 부풀대로 부풀다가 터져서 죽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농담의 말이기도 하고 몇몇 Some Existences in the Sky가 그 당시 나의 고향에서 성경(The Bible)에서와 같은 기적들을 행하지 못하게 되니 나에게 만이라도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이 세상에 있는 대표적인 동물들의 모습들을 그 동물들이 실제로 나의 고향 집의 장독대 부근 및 마당 위의, 때때로 지금까지 지역 구분 없이 이곳 저곳에서, 허공에 있는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니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릴 때 나의 부모님 및 다른 사람들에게 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몇몇 Some Existences in the Sky가 하마가 부풀대로 부풀다가 터지게 되는 모습을 통해서 실제로는 나에게 무엇을 설명을 하고자, 무엇을 나타내어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을까?

그 외에도 텔레비전 동물의 왕국에 등장을 하는 것과 같은 지구상의 갖가지 동물들이 나타났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현상들이 가끔 나타난 일들이 있었다. 사라질 때는 하늘로 올라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도 있었고 허공에 보이는 커다란 구멍과 같은 곳으로 걸어가고 날아가면서 사라진 것들도 꽤 많이 있었다. 헛것이니 환영이니 전두엽이니 초능력이니 기현상이니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을 떠나서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성경(The Bible)에 대해서 동·서양의 개념으로 민족이나 국가의 개념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를 하기가 쉬울까? Believable Or Unbelievable, 30~40년 전의 나의 고향의 나의 집의 장독대 부근과 마당 위의 허공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Mr. P.P.R이란 분과 마을 회관 앞에서 내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현상에 대한 것, 즉 사람과 사람의 눈에 나타나 보이는 이 세상 외에 사람에게는 나타나 보이지 않는 존재 및 세상에 대한 것, 및 나의 향후의 정치 활동에 대한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과정 중 세상 및 세상 물정 및 사람의 사회의 일에 대해서 모르는 어린 내가 이해를 하기에 Mr. P.P.R이란 분이 나와 한판 붙자는 식으로, 즉 힘겨루기를 하자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 같기에 Mr. P.P.R이란 분이 내 머리 위의 하늘에 있는 Some Existences란 것을 볼 수 있는 가를 물어 보니 나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나 외에는 없다고 말을 하기에 그러면 Mr. P.P.R이란 분 및 친구들 및 이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은 나 혼자인 셈인데 Mr. P.P.R이란 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는 지를 묻고 모두를 데리고 와도, 즉 나에게는 상대가 혼자이거나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이거나 마찬가지이니 내가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지만, 나와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그 이유로서 내가 이 지구를 사람의 말로 표현을 하자면 보이지 않는 칼로 또는 무형의 힘으로 두 쪽으로 또는 그 이상으로 내가 원하는 만큼 쪼개 버리거나 이 지구와 더불어 통째로 다른 곳으로 날려 보낼 것이니 지구 위에 혼자 있으나 여러 명이 있으나 나에게는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할 때, 혹시나 내가 이 지구를 날려 보내고자 한 곳이 나의 고향 집의 장독대 부근의 허공에 나타나 보였던 커다란 구멍으로 통하는 곳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향후에 대통령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말을 두고서, 즉 내 혼자서 하는 말이면 아무리 대통령이란 말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단호하고 집요하고 당연한 듯이 대통령이 될 것이란 말도 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니 그 문제에 대한 나의 말을 두고서, 나와의 대화 중 나에 대해서 이 세상의, 또는 대한민국의, 어떤 정치 조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한 것이 있는 것 같고, 특히 누군가가 말을 한 왕족이란 신분과, 특히 서양의 왕족이란 신분과, 연관을 지어서 생각을 한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러니 향후 민주주의 정치 활동 대신에 왕정으로의 복귀를 하여 왕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러니 외국의 왕국 또는 왕족 또는 왕과 연관을 지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또 나와 같은 경우가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선지자 또는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나 내가 어릴 때 우리 사회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몇 년 간에 걸쳐서 읽어 보았을 때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상태로는 그렇게 되기가 힘들 것이고 그 대신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와 관련된 직분으로 교황이 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교’씨 가문의 ‘황청’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말이 있고 그 결과 이 세상에서의 행위의 하나로 ‘대부’로서 교황과 연관이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 등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Mr, P.P.R. 및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하는 과정 중 나의 향후 정치 활동 및 교황이 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는 것에 대한 말을 듣게 되는 사람들로서는 나의 고향에서 그리고 어린 나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으니 나로부터 나와 관련이 된 자신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무엇인가의 조직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것으로 대화를 하게 되니 내 혼자의 입장에서, 즉 비록 나와 동행을 하는 Some Existences in the Heaven이란 존재가 나의 머리 위의 하늘에 그리고 내 안에 존재를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모습만 보이니 내 혼자의 존재로서, 말을 하는 나와는 대화가 항상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고 늘 시비 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키지만 세상의 일 및 사람의 일 및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백지에 가까울 정도로 이해를 하기가 힘든 것이 나였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 및 전통 및 조선 시대의 예의범절에 젖어 있던 사람들의 사고 방식 자체를 이해를 못했으니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와 한판 붙자는 식으로 말을 하는 Mr. P.P.R.이라는 분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중 내가 말을 한 것처럼 이 지구를 이렇게 저렇게 무형의 칼로 또는 무형의 힘으로 쪼개지 못하거나 다른 곳으로 날려 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유로서 무엇을 말을 했었고 나로부터의 근본적인 몇몇 이유들은, 특히 호승심이 강하거나 터프한 맛에 살거나 폼생폼사 하는 멋에 살거나 또한 근래의 종교 분야의 지식 공동체 또는 지식 공장 또는 집단 창작 공장의 사탕발림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몇몇 신앙심들처럼 만약에 누군가가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을 만났고 사명을 받았고 성령이 받아서 자신의 몸 안에 사람의 영혼처럼 거하고 있으면 최소한 삼손이나 헤라클레스나 슈퍼맨이나 홍길동 정도는 되는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그래서 매일 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나 이 도전자 저 도전자와 힘겨루기 시시비비 가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을 하거나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 및 사람의 사후의 저 세상 및 그 속의 생명체가 창조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거의 없는 사람이 볼 때는 마치 구차한 변명 거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근본적인 몇몇 이유들은, 무엇이었을까?

Some Existence in the Heaven로서 '내 안의 내'가 사람으로서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 미안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즉 Some Existence in the Sky로서 '내 안의 나'는 이 세상 및 사람들과는 전혀 별개로 하나님과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로서 사명을 하는 것이지만 사람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삶 자체가 일생 동안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니, 그것도 믿기 힘든 우리 사회의 사회 활동 현상의 하나로 인하여 골격에 변화가 생기고 나의 신체의 육체적인 힘이 마치 2퍼센트 부족한 듯한 그러나 나의 근력이 인공 지능 및 형상 합금인 것처럼 단련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일상 속에서의 나의 육체적인 활동 분야가 상대적으로 곤고하게 되는 것이니,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는 사람이란 존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사람으로서의 나란 존재에게는 미안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 중 다른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천기 누설과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는 것을 걱정을 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면서도 내가 말을 하면 내가 하는 말 자체가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니 그냥 공허한 말이 되고 재미로만 생각을 하게 되니 오히려 나의 말에 대한 신뢰감이 실추가 되게 되는 것이 그 하나였다. 더불어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나의 말을 엿듣게 되는 누군가에 의해서는 자신이 사람 및 사람 사는 사회 및 전통 및 관습 및 우리 것 또는 우리 것에 속하는 종교 및 신의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사후 사람의 영혼 및 그 세계에 대해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동서양 및 민족 및 국가의 개념 등으로 편 가르기 식으로 나의 말을 이해를 하게 되니 향후 곤란함이 예측이 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더불어 나의 해야 할 말이나 일들이 점차 어렵게 되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였다.

대한민국에 몇 개인지 모르지만 종교라고 불리는 것이 꽤 있다. 혹시나 누군가가 종교 논쟁이나 교리 논쟁을 하고 싶으면 유교, 불교, 무속 신앙, 이슬람교, 기독교, 개신교, 카톨릭교, 유태교, 등등의 말을 떠나서 최소한 약 30~40년 전에 각각의 종교 및 종교 교리와 관련 되어 쓰인 책들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각각의 종교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해하기 힘든 주제들이나 현상들이 존재를 하고 서로 간에 대화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주제들이나 현상들이 사람들의 수도나 고행이나 명상이나 문리 등을 통해서 사람들의 터득하고 깨우친 것이든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omniscient omnipotent above-time-space,,,한 Some Existence in the Heaven에 의해 선지자와 같이 선택된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이나 초능력이나 초자연적인 것이나 십계명과 같은 주제들이나 현상들이든 모두가 개개인의 사람의 매일 매일의 삶과 관련이 되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 및 The World of Some Existence in the Heaven과 관련이 되니, 특히 대화를 통해서 또는 독서백편의자현과 같이 각각의 종교에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각자가 이해를 하고 체득하는 것이니, 흑과 백의 논리로 서로 간에 맞서는 것 자체가 종교의 교리나 논리에 맞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사람의 삶과 동떨어져 이론이나 교리로만 존재를 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의 일생의 삶이 흑과 백의 논리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니 그렇지 않는 가 싶다. 특히 서로 간에 치고 박는 것 자체는 더더욱 종교 교리나 논리에 어긋나는 행위일 것이다. 약 30~40년 전에 각각의 종교 및 종교 교리와 관련 되어 쓰인 책들을 읽어 보라고 말을 하는 것은 비록 최근 약 30~40년 사이에 각각의 종교에 대한 진리나 또는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 및 The World of Some Existence in the Heaven와 관련하여 새로운 체험 및 기적과 같은 증거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몰라도 최근 수 십 년 동안 국가 간의 왕래가 활발하고 정보 통신 분야의 발달이 활발하고 지식의 발달이 활발하여 인류의 종교들에서 교리나 이론만 편취를 하여 마치 대학교에서 연구 논문 짜깁기 하듯이 새로이 교리나 이론만 만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70804.

JUNGHEEDEUK. 정희득.

“황우석의 발견을 칭찬하지 않은건 역사적 아이러니”

[뉴시스] 2007-08-04 01:25

【뉴욕=뉴시스】 뉴욕타임스가 보스턴의 과학자들이 2일(이하 현지시간) 규명한 최초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추출과 관련해 “이는 황우석 박사가 과학계 사상 처음으로 해낸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3일 A 섹션 16면에 ‘불신당한 줄기세포연구속에서 이뤄진 최초의 과학적 진실’이라는 니콜라스 웨이드 기자의 보도를 통해 “2년전 황우석 박사가 수립한 줄기세포 연구를 재검증한 결과 그는 자신이 주장하지 않았다해도 최초의 과학적 성취를 해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웨이드 기자는 “성인의 세포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한 황 박사가 눈문조작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불신됐으나 보스턴의 과학자들이 줄기세포를 재검증한 결과 성인의 수태되지 않은 난자에서 수립된 처녀생식의 산물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보스턴어린이병원의 김기태박사와 조지 데일리 박사팀이 과학저널 ‘셀스템셀’에 발표한 연구성과를 전하면서 “황 박사팀은 그들의 눈을 가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독창적인 발견을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펜실배니아주립대 처녀생식전문가 켄트 브라나 박사의 말을 소개했다.

이와 관련, 존스홉킨스 대학의 줄기세포 전문가 존 기어하트 교수는 “그들의 발견에 사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사이언스가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에 따라 논문을 취소했지만 ‘처녀생식의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위의 의견에 따라 데일리 박사팀이 새로운 유전자 분석방법으로 황 박사가 수립한 줄기세포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웨이드 기자는 데일리 박사가 “최초로 처녀생식 줄기세포를 수립한 황 박사가 칭찬받지 못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면서 “황 박사가 2004년 논문에서 처녀생식의 가능성이 없다고 기술한 것때문에 처녀생식을 통한 배아줄기세포 수립은 과학적 신뢰를 많이 얻지는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과 과학자들의 유연한 자세는 ‘데이터 조작’이라는 지엽적인 사실에 매몰돼 위대한 연구성과를 매몰차게 외면한 한국 언론과 과학계의 풍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

부처님은 어떤분일까?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인도에 싯다르타라는 젊은 왕자가 왕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매우 잘 생겼고 총명했으며 바랄 것이 없는 부귀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또 그에겐 예쁜 부인도 있었습니다. 왕자는 궁궐안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거리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외롭게 걸어가는 한노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병에걸린 창백한 젊은이도 보았습니다. 또 근처의 땅바닥에는 무엇인가가 누워 있었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늘 행복한 생활을 해온 그는 일찍이 불행한 사람이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모든 사람들이 슬픔과 괴로움에 찬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왜 그럴까? 그는 그것을 밝혀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날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살그머니 궁궐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가족과 모든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떠나왔으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은 왜 고통을 받는가"라는 답을 찾고자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후 6년이라는 오랜세월이 흐른뒤, 그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깊은 명상을 하던중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의 몸은 여위었고 옷은 누더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가 찾고자했던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언제나 안락한 생활을 탐냄으로써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가지려고 하고, 명예를 가지려고 하고,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욕심"이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그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싯다르타의 가르침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 퍼져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불타(바른 진리를 깨달은 사람. 즉 부처를 말함)라고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가 되었고, 불타의 종교 "불교"는 세계의 위대한 종교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 시조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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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제일 처음으로 자신의 혈통적인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族譜를 만들었던 사람은 중국 송나라의 소순(蘇洵(1009-1066년))이란 분이였다. 하지만 소순이 편찬한 <蘇氏譜>에서도 소씨의 먼 來源을 다 계보화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그외의 중국 성씨들과 한국성씨들은 더 말할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세계 어느 씨족을 막론하고 그 혈통적인 근원을 끝까지 알수있는 씨족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어쩌면 인류역사 발전 과정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수있다. 따라서 祖上의 뿌리에 대해서는 그누구나 알수있는데까지 알면 되는것이다.

缶林洪氏의 뿌리에 대해서도 그 예외일수는 없다. 오늘의 부림홍씨을 있게 한 부림홍씨의 혈통은 유구한 세월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他姓氏들과 마찬가지로 부림홍씨 역시 조상에 대한 유래와 근원을 다밝힐수는 없다.

홍씨의 원조인 洪天河(학사공)께서 당나라초에 초나라 요양에서 살다가 문화사절로 고구려에들어왔다는 기록이 李牧隱 선생의 당성인이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 자세히 적혀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洪氏의 시조는 중국 唐나라에서 고구려로 이주한 學士公 휘 天河란 분의 후손이라는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휘 천하 자신의 내력은 물론이거니와 그후손들의 갈래와 실상마저도 자세하게 알수가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천하의 몇대손이 남양홍씨의 시조가 되었는지 혹은 부림홍씨의 시조가 되었는지를 알수가 없다.

조선조 숙종때 유명한 性理學者이며 禮論家, 역사학자였던 缶林人 木齋公 여하(汝河)(1621-1678)선생이 쓰신 <缶林洪氏 族譜序>에 의하면 부림홍씨의 시조로 전해오는 분은 고려 중엽 재상을 지내신 휘 란(鸞) 이였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목재선생은 <東國通鑑提綱> <周易口訣> <禮儀考證> <海東姓苑> <經書解義> 등 많은 저서를 남기신 대학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시조에 대한 문제는 누구보다도 신중하고 깊이 탐구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목재선생의 이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부림홍씨 시조에 관한 기록중 가장 권위있고 신빙할수있는 定說이다.

부림홍씨 시조 휘 란(鸞) 역시 고려 중엽 재상을 지냈음과 남양지방에서 缶林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외에는 더 구체적인 행적은 전해오고 있지 않다. 다시말하면 휘 天河의 몇대손이 휘 鸞인지 그의 父,祖父가 누구인지를 알수있는 역사적 근거가 전해오고 있지를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수있는 부림홍씨의 來源중 가장 오래된 분은 학사공 천하이며 그다음은 고려 중엽에 재상을 지내신 諱 鸞일 뿐이다. 휘 란의 직계 자손에 대한 계보도 현재로서는 알수가 없다. 휘 란의 몇대손인지는 모르지만 고려조에 直長이란 벼슬을 하신 휘 좌(佐)에 이르러 비로소 부림홍씨의 셰계를 분명히 알수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림홍씨는 휘 좌를 1世祖로 모시게 된 것이다.

휘 좌의 子에 2세 양제(楊濟), 3세 우(祐), 4세 서(敍), 그다음 敍의 子중에 5世孫이 되는 인단(仁袒), 인석(仁석) 두분이 계셨는데 두분중 兄인 인단은 그대로 고향 부계에 계시고 아우인 인석은 함창 고을로 옳겨 사시게 되었다. 때문에 부림홍씨 중에 인석의 후손들을 함창파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 부계에 세거해온 인단의 후손들이 불천위 조상으로 모시는 고려문하사인 휘 로(魯), 호 경재(敬齋)는 인단의 玄孫이며 함창파에서 불천위 조상으로 모시는 조선조 대제학 휘 귀달(貴達), 호 허백(虛白)은 인석의 5대손이다. 이것이 부림홍씨의 개략적인 유래와 근원이다.

부림홍씨 후예들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의 근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할것이다.

※ 姓氏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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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姓은 혈족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이것이 언제부터 발생 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미 인류사회가 시작되는 원시시대 부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원시 사회는 혈연을 기초로 하여 모여 사는 집단체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 모(母)만 확실히 알 수 있고 부(父)는 알수 없는것 이었다. 그러므로 처음에 모계 혈연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이른바 모계사회가 나타났다가 뒤에 부계사회로 전환되었거니와, 모계(母系)사회건 부계(父系)사회건 원시사회는 조상이 같은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모여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시사회를 씨족사회라고 하는 것이다

씨족사회는 씨족전원이 힘을 합하여 수렵, 어로, 농경에 종사하고 외구의 침입도 공동으로 방어하였다. 그리고 씨족사회는 그 집단을 통솔하기 위하여 씨족원 중에 가장 경험이 많고 덕식이 있는 사람을 뽑아 씨족장으로 삼고, 큰일이 있을 때에는 씨족회의를 열어서 결정하였는데, 이 씨족회의는 자못 민주적이어서 씨족원은 누구나 다 동등한 자격으로 참석하고 씨족 전원의 찬성으로 결정하였다. 씨족사회도 시대가 흐르고 인구가 증가하고 대(代)가 멀어짐에 따라 자연히 같은 씨족중 에도 혈통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 되어 여러개의 씨족집단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많은 씨족집단이 나타나게 되자 자연히 가까이 있는 씨족들끼리 서로 합하여 더 큰 사회를 조직하고, 생산물을 교환하고 외적을 방어 하였는데, 이러한 사회를 우리는 부족사회라 한다. 부족사회에서는 씨족장들이 모여서 부족장을 선출하고 부족국가를 형성하였으며, 부족국가는 다시 부족 연맹체를 조직하고 부족연맹의 왕을 선출하여 국가생활을 영위하게 된 것은 오늘날 사회학, 역사학의 상식으로 되어 있다. 이와같이 인류사회는 혈연에서 출발하고 혈연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기 때문에. 원시 시대부터 씨족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였다. 자기 조상을 숭배하고 동족끼리 서로 사랑하고 씨족의 명예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각 씨족은 다른 씨족과 구별하기 위하여 각기 명칭이 있었을 것이며, 그 명칭은 문자를 사용한 뒤에 성으로 표현하였다.

동양에 있어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었으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명이 산명, 강명으로 성을 삼았다.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강씨(姜氏)라 하고, 황제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살았으므로 성을 희씨(姬氏)라 하였으며, 순(舜)임금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었으므로 성을 요씨(姚氏)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姓氏란 이름자의 첫글자를 말하며 "홍길동" 이라고 할때 洪자를 말하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surname라고 하여 "존 F 케네디"라고 할때 케네디를 말한다.

★ 삼국시대의 성씨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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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의하면 건국 시조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기에 고(高)씨라고 하였으며, 주몽은 충신들에게 극(克)씨, 중실(仲室)씨, 소실(小室)씨를 사성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 유리왕이 사성 하였다는 위씨,우씨 또는 대무신왕이 사성 하였다는 낙, 부정, 대실씨 등은 전설이라고 하더라도 대무신 왕때의 을두지, 송옥구를 비롯하여 이후 재상급만도 목도루, 고복장, 명림답부, 을파소, 고우루, 명림어수, 음우, 창조리, 을지문덕, 연개소문 등등의 이름이 있으며, 또 한 왕비나 왕모의 성으로 예, 송, 우, 연, 주씨 등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 한서에 나타나 있는 인명의 기록을 보면, 주몽은 이름만 기록되어 있으나, 장수왕 때에 장수왕 이름을 고연(高璉)으로 기록하여 처음으로 고구려 왕실의 성을 고(高)씨로 기록 하였으며, 장수왕이 사신으로 보낸 고익, 마루, 손참구, 동마 등의 이름에도 모두 성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씨 중에서 고구려에 연원을 두는 성씨는 극히 드물다.

고씨는 고주몽의 후손이 강원도 횡성 지방에 약간 산재한다고 전해지고 그 외의 고씨는 모두 탐라 고씨계이다. 오직 강씨가 고구려의 장군이었다는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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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또한 백제에서는 시조 온조(溫祚)가 부여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부여(扶餘)씨라고 하였으나 중국의 후한서, 삼국지, 진서에는 왕명이 기록 되어있는데 모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기록 되어 있으며, 진서, 송서 등의 기록에는 근초고왕(13대) 부터 위덕왕(27대)까지는 여(餘)씨로 표시하다가 무왕(29대)부터 부여(扶餘)씨로 기록하였다.

또한 온조를 따라 남하하여 백제 건국에 공을 세우고 십제 공신이 되었다는 전섭과 마여를 원조로 하는 전씨와 마씨가 있다.

개루왕때 인물인 도미를 선계로 하는 성주도씨가 있으며, 백제가 망하자 당나라로 망명하여 당 고종으로부터 새로 사성받고 웅진도독이 되어 귀국했다는 부여융을 시조로 하는 부여서씨가 있다.

이 외에 백제 8대 성과 같은 성으로 진씨,연씨,국씨가 현재도 있기는 하나 그 연원이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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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의 기원은 아무래도 신라에서 연원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박,석,김 3성과 이,최,손,정,배,설의 6촌성에서 연원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 일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는 박(朴), 석(昔), 김(金) 3성의 전설이 전해 오며, 유리왕 9년(32)에 육부(六部)의 촌장에게 각각 이(李), 정(鄭), 손(孫), 최(崔) , 배(裵), 설(薛)씨의 성을 사성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7세기 초까지만 해도 아직 성씨가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수 있으며, 성씨가 쓰이기 전에는 신분을 표시하는 역활을 했던 것은 그 사람의 출신지이다. 다만 왕실에서는 24대 진흥왕 때부터 김씨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령 [양서],[신라전]에는 신라왕 모태가 처음 사신을 보내왔다'고 나와 있는데, 모태란 23대 법흥왕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북제서]에는 법흥왕 다음 임금인 진흥왕을 김진흥, 진평왕을 김진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왕실의 김씨를 제외한 그 밖의 6촌성들은 그보다 훨씬 뒤인 중기에야 비로소 등장하게 된다. 다만 가락국의 시조로 알려진 수로왕의 12대손인 김유신은 제외이다. 김유신은 누이가 태종무열왕의 비가 되면서부터 김유신이 처음으로 김씨를 사용하게 된것 같다는 설도 있다.

신라 시대의 성씨로는 3성과 6촌성 외에 9세기 초 당나라에 갔다온 후 청해진 대사가 된 장보고가 처음 장씨로 등장하였고,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러서야 많은 새로운 姓의 등장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삼국 시대부터 성을 쓴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다시 추정해 보면

♠ 고구려는 장수왕시대(413~490)부터,

고(高), 을(乙), 예(芮), 송(松), 목(穆), 간, 주(舟), 마(馬), 손(孫), 동(董), 채, 연(淵), 명림(明臨), 을지(乙支) 등이 사용되었으며

♠ 백제는 근초고왕시대(346~375)부터,

여, 사, 연, 협, 해, 진, 국, 목, 의 팔족과 왕, 장, 사마, 수미, 고이, 흑치 등

♠ 신라는 진흥왕시대(540~576)부터 성을 쓴것으로 기록에서 추정한다.

박, 석, 김 3성과 이, 최, 정, 손, 배, 설의 육부의 6성과 장, 비 등이있고, 왕실의 성인 고(高),여(餘),김(金)을 쓴 사람이 가장 많았다

삼국시대에도 성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았고, 주로 중국에 왕래한 사신들과 유학자와 장보고와 같이 무역을 한 사람들이 성을 사용하였으며, 일반 민중은 신라 말기까지 성을 쓰지 않았다.

★ 고려시대의 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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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 후삼국의 대동란을 당하여 평민으로서 각지에서 일어난 상주의 원종(元宗) 애노(哀奴), 죽주(竹州),죽산의 기명(箕蓂), 북원(原州)의 량길(梁吉)-良吉, 태봉왕 궁예의 부장인 홍언(弘彦) 명귀(明貴), 후백제왕 견명(甄蓂)의 부장인 관흔(官昕) 상귀(相貴) 상달(尙達) 웅환(熊奐), 고려 태조 의 부장인 홍술(弘述), 백옥(白玉), 삼웅산(三熊山), 복사귀(卜沙貴)등은 모두 성을 쓰지 아니하였다.

이 중에 고려 태조의 부장인 홍술, 백옥, 삼웅산, 복사귀는 고려 태조를 추대한 개국공신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의 초명으로서 그들이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으로 개명한 것은 고려 건국 후 그들이 귀하게 된 뒤의 일이며, 아마 태조로부터 사성되었을 것이다.

고려 태조는 사성한 예가 많이 있다.

지금의 강릉지방을 관장하고 있던 명주장군 순식(順式)이 귀순하자 태조는 왕(王)씨의 성을 주고, 발해 태자(渤海太子) 대광현(大光顯)이 귀순하자 또한 왕(王)씨의 성을 주고, 신라인 김신(金辛)이 태조를 보필하여 공이 많음에 권씨(權氏)의 성을 주어 안동권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또 ≪동국흥지승람(東國興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개국한 뒤 목천(木川) 사람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므로 태조는 이를 미워하여 우(午), 마(馬), 상(象), 돈(豚), 장(獐),과 같은 짐승의 뜻을 가진 성(姓)을 주었는데, 뒤에 우(午)는 우(于), 상(象)은 상(尙), 돈(豚)은 돈(頓), 장(獐)은 장(張)으로 고쳤다는 설이 있다. 이것은 어떻든 고려 초기부터 성을 쓰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 귀족, 관료 계급은 성을 쓰지 아니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중기 문종(文宗) 9년(1055)에 성을 붙이지 아니한 사람은 과거에 급제할 자격을 주지 아니하는 법령을 내린 것을 보면, 문종시대까지도 성을 쓰지 아니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종 9년의 이 법령은 실로 우리나라 성의 한 시기를 긋는 것으로서, 이때부터 성이 보편화 되었으나, 노비 등 천인 계급에 이르러서는 조선 초기까지도 성을 쓰지 아니하였다.

★ 조선시대 이후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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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성은 양민에게 까지도 보편화 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조선 후기까지도 성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09년 새로운 호적법이 시행되면서 어느 누구라도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기회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동(洞)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성씨의 종류 수가 더욱 늘어났다. 따라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가 많았졌다.

우리나라 성의 수를 살펴 보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1486년(성종)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277성, 영조(21대)에 편찬한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1908년(고종)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496성,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250성, 1960년 국세조사에는 258성,

최근의 조사인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74성

(인구별 성씨, ==> http://www.shinjongwoo.co.kr/html/area_name.html)

그러나 일제식민 통치하에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의 일환으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한 1939년의 창씨개명은 1945년 해방과 1946년 10월 23 일 미군정이 공포한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에 따라 우리나라 성씨 역사의 가장 큰 수난기였다. 이후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의 귀화 등으로 새로운 성씨와 본관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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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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