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와 시청 및 도청
포장 마차를 비롯하여 노점상 철거란 말을 들을 때마다 하게 되는 생각이 시청이든 도청이든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가에서 정책을 시행을 해도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효과가 발생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까지는 먼저 된, 또는 이룬, 자와 나중 되고자, 또는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 동일한 경쟁 및 삶의 여건이 제공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포장 마차 및 노점상도 각각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좋은 빌딩의 좋은 가게에서 장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좋은 빌딩과 좋은 가게를 가진 사람들만 지역 주민이 아니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지역 주민도 아니다. 근래의 이해 관계니 영리 추구니 경쟁 관계니 하는 말들이 기성을 부리면서 다시 우리 사회에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경우들이, 법 테두리 안에서라는 말로, 교묘히 고개를 드는 현상들이 이곳 저곳에서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집단 이기주의의 끝은 서로 간의 파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단지 어떤 모습의 파국이냐가 다를 뿐이다.
사람의 삶이 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각자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이듯이 지역 주민의 삶도 마찬가지이고 시청이나 도청이나 국가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 중에 수익이 좋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도 지역이나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발생한 일의 결과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생존권마저 경시되는 것은, 그것도 생존권을 위해서 존재하는 몇 가지 항목들을 핑계로 생존권이 전도 되는 것은, 심각한 의식의 마비다. 말 그대로 수 백 년 된 세뇌의 극치를 보여 주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삶이나 포장 마차를 하고 사는 삶이나 사회적으로 또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에는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수 십 년 주어진 한 사람의 삶이란 관점에서는, 또는 가치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물론 물질이나 정신이냐의 문제를 떠나서 가치 있고 풍요롭고 편리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를 할 것이지만 법의 범위를 넘어서 사람의 도리 내에서 할 일이다. 시청이나 도청이나 국가의 할 일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기관이나 제도를 위해서 사람이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서 각종 기관이나 제도가 존재를 하는 것인데 주객이 전도 된 것이 수 백 년은 된 우리의 전통인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가풍이 있는데 시대와 여건을 무시하고 가풍을 위해서 가족이 무시 되는 삶을 사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20070525.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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