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페인트 공이, 제일 많은 나라 01

누군가가 식물 인간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되었다고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대해서 말을 하는 그리고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내 안의 나의 존재에 대한 말을 하는 내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으로 고치든지 아니면 나를 해치지는 못하니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어릴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과 방식으로 성경과 같은 증거를 하고자 했듯이 나의 나이 마흔이 될 무렵에 나와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다시 나를 통해서 어릴 때의 하고자 한 방식으로 성경에서와 같은 증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이 동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다른 글에서 말을 했듯이 나의 언행과 생활 자체를 통제를 하는 것을 통해서 마치 사회적으로 식물인간이 되는 것과 같게 만들고자 한다면 그 내용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변명과 핑계로서가 아니라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비록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때때로 사람 사는 세상에 성경에서와 같이 기도의 응답이나 은사나 방언과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성경에서와 같은 증거와 증언을 하지만 존재 자체가 그리고 증거 행위 자체가 사람의 존재와는 전혀 별개인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고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내 안의 나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만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이 또 다른 별개의 존재이듯이 비록 내 안의 나가 사람의 영혼과는 존재의 본질이 다르지만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과 비슷한 경우일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2001년 8월의 그 날에 나와 이런 저런 텔레파시나 교통이 가능했던 사람들 중에 만의 하나 질병이 나았거나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나의 존재 자체와는, 즉 성경에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믿음이 믿는 자를 구원했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존재 자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그 때의 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말에도 영(Spirit), 신(Spirit;God), 하늘, 하늘님, 산신, 도깨비라는 말이 비록 종교 관련 기록이 없어도 있듯이 성경(The Bible)이란 말이 들어 간다고 무조건 서양이나 외국이나 특히 미국과 결부를 시키는 습관부터, 터부시 하는 습관부터, 먼저 버리는 것이 사람에 대한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앙인이 쓰는 말 중에 기도에 대한 응답이란 말도 은사를 받는다는 말도 성령을 받는 다는 말도 있고 방언을 한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성경(The Bible)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 그런데 사실일까? 자작극일까? 쑈일까? 다 맞는 말이 될 수가 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은사를, 성령을, 주는 주체가 비록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님, 야훼님, 여호와 하나님, 천사님, 영,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한 하나님의 영(사람의 인지적 관점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God, Jehovah, Yahweh, The Lord God, Angel, Spirit, I AM, God's Spirit(Jesus Christ from the viewpoint of human cognition) 등이라고 말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타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 특히 위의 경우에는 그런 순간이 예정이 된 것도 아니고 또 짧기도 할 것이니 더욱 더 그럴 것이니, 세 경우 모두가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제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자신의 경우 외에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세 경우 모두 맞을 것이다.

성경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세계 및 사람의 사후 세계의 존재를 위한 증거의 사명을 위해서 선택이 된 사람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선지자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처럼 비록 일생에 걸친 경험과 체험과 능력들과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적 본질을 영이라고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눈으로 서로를 보듯이 사람과 사람이 음성으로 귀를 통해서 대화를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피부로 접촉을 하듯이 그런 경험과 체험이 아니니 또 일정 정도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역적으로 동양이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면서 굳이 성경(The Bible)이 언급이 된 것은 나의 다른 글들을 참조를 하면 알 수가 있겠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즉 영이, 사람이나 사람의 사후 영혼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존재이고 그에 대한 것이 성경(The Bible)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동양이니 대한민국이니 하는 것은 사람의 언어로 만들어진 개념이지 그 언어에 의해서 사람 자체가, 즉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고 또 국가 대 국가의 교류가 많아지고 특히 정보 통신이 발달이 되었으니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졌지만 시대 사로 볼 때 과거에는 조선 시대란 왕의 통치에 의한 국가여서 왕의 명령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니 철저한 신분 계층에 의해서 왕족과 귀족 외에는 삶 자체가 존재를 한다고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그 이후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 및 해방 이후 급변 기를 맞았으니 우리 나라의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겠지만 현실 세계 자체가 그렇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지구 상의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중의 한 민족과 국가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아는 것이 항상 절대 진리니 절대적 사실이니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약 3-40년 전, 그러니까 1970년대 무렵의, 그것도 지금과 같은 영화니 텔레비전이니 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운 시골에서, 내가 어릴 때 내가 사람들과의 활동 중 사람 및 사람 사는 세상에 있는 것에 대해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한다고 해도 내가 느낀 것을 사람의 언어로 모두 표현을 하기가 힘들 것인데 하물며 존재 자체의 본질이 영으로서 비록 존재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인지 능력 자체만으로는 사람의 눈에 보이거나 사람의 귀로 들리거나 사람이 피부로 접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가끔 내 머리 위에 누군가가 있는지 보라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또 묻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나의 머리 위의 방향에 있어서 내가 볼 수가 없고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 혹시나 나와 같은 경우나 그 당시 다른 대륙에 발생했을지도 모를 나와 같은 경우나 또는 예수나 예수 그리스도나 그리스도 예수의 경우와 같은 경우가 있어서 나에게 나의 머리 위 하늘에 있는 존재를 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대 대체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간혹 나의 그런 경우를 이용하여 누군가가 나의 두에 서서 장난을 치는 경우는 있었다.

나의 고향에 누군가가 왔기에 인사를 한다고 한 것이 고개가 너무 앞으로 숙여져서 내가 넘어진 경우가 있었다. 다른 글에서 말을 했듯이 나의 고향의 마을 회관 앞에서 일본(공장들) 오스트레일리아(캥거루 때문에) 뉴질랜드(초원) 남극(펭귄) 아르헨티나(천사의 동상과 같은 것) 엔젤 폭포 멕시코(사막과 선인장) 미국(집단과 같은 것(횃불)을 든 동상 및 깃털 꼽고 소 같은 동물 탄 사람들 및 자동차 및 공장 등) 알래스카(채찍으로 개를 학대하는 모습들) 등등을 볼 때나 가끔 누군가가 인류와 관련된 것들을 알고 싶어 할 때처럼 오래 동안 절대적인 왕으로 통치를 한 파라오가 살았던 곳(고향 앞 바다 같은 모래가 많고 모래 위에 무엇인가를 뾰족한 것들이 있고 짐승은 아닌데 짐승과 같이 생긴 것도 있고 등등)을 나의 마루에 앉아서 볼 때나 내가 목이 졸리거나 들리거나 등등의 여타의 경우들처럼 내 몸이 보이지 않고 형체도 없고 잡을 것도 없는 그러나 내가 달리 힘을 쓸 수도 없이 눌린 경우들 중의 한 경우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상황 설명을 드렸는데 잘 이해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진 것은 누군가가 나의 머리 위에 흙으로 무엇인가의 장난을 친 것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믿거나 말거나 이미 다른 글들에서 상세히 설명을 한 것처럼 사람의 표현으로 말을 하면 사용량이나 운동량이 인공 지능처럼 체크가 되고 형성 합금의 속성과 같이 단련이 되지 않는 나의 근육에 기인을 한 것으로 나의 행동이 느리고 그 결과 나의 숨소리 및 반사 신경이 느린 것을 이용하여 그런 장난을 친 것이 그 당시만 해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나의 만 41년의 삶 동안 누군가로부터 어떤 감언이설에 속고, 즉 예를 들어서 추기경과 같은 종교 관련 직분을 받는 것을 지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기업 분야나 연예인 분야나 학문 분야나 과학 분야나 종교 분야 등등에서의 활동이나 정치 활동에 대한 지원을 받았는지 몰라도 등등, 무슨 특명을 받았는지 몰라도 나의 고향에서부터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동안에 내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고 다시 서울 대학교에 진학을 하는 등등 내가 가는 곳 마다 온갖 형태로, 즉 부모님이니 형이니 동생이니 친척이니 친구니 동료니 지인이니 그리고 심지어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등으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나 나이가 40대인 현재도 나이를 20대나 60대로 말을 하는 것이나 학력을 달리 말을 하는 것 등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2001년 8월의 그 날에 어디선가의 공간에서 들려 왔던 것처럼 누군가는 자신이 한 행동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위의 경우들에 대해서 사진을 보여주고서는, 실제로는 내가 보지도 못하게 스쳐지나 간 후 나의 관찰력을 키운다고 한 것이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하거나 내 뒤에 서서는 자신이 내가 말을 하고자 한 하늘에서 말을 한 존재라고 말을 하고자 한 것과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근래에는 내가 수원시의 이곳 저곳의 도서관에서 지금과 같은 글을 쓰고 또 언론사의 기사에 댓 글을 달 때도 그 내용은 보지 않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별의별 말들을, 유언비어들을, 달리 만들면 별의별 색깔들을, 만들고 입히고 있다. 아주 어릴 때인 시골에서 나에게 내가 말을 하는 것들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서양 및 서양의 종교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사람이 실제로 없었고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용들이, 물론 그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표현이 되지 않았겠지만,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원활한 지금까지도 종교계에서는 논쟁이 되고 있듯이 누군가가 가르쳐서 될 내용이 아닌 것은 약 3-40년 전 그 당시에도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도 몇몇 사람들은 단지 내가 내 스스로 알게 된 사실을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끝까지 외국이나 외국인과 연관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도 단어만, 성경(The Bible)이라는 단어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현상들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나와 대화를 할 때는 내가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부정을 하고서는 나중에는 나와의 대화 중에서 언급이 되게 된 말들과 종교에 대한 지식들을 연합하여 자신들만의 말들을 만들어서는 다시 나와 맞붙기 위해서 나타나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서로 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없이 단지 이론에 불과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경우에는 매일 같이 일상 속에서 그 당시의 인류의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는 증거나 증명이 힘들게 존재를 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의, 계속적인 경험과 체험에 의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을 말을 하게 되니 대화를 하면 할수록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할수록 부분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험의 종교란 말이 있듯이 종교 자체가, 즉 주제 자체가,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의,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중요한 것이니 나의 어릴 때 그 당시에도 나의 어릴 때 그 당시에 아는 언어 수준으로 표현을 했듯이 다양하게 응용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래서 상황에 맞게 말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등등의 경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나오니 그 말로 또 시비를 걸기에 내가 먼저 대화를 차단을 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비록 대체로 보이지는 않았고 나와 두뇌로 머리로 가슴으로 등등 대화가 되는 것으로 또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또는 내가 느낄 수가 있는 것으로, 특히 나에게 다가 왔다가 다시 하늘 멀리 멀어져 가는 것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듯이, 나의 고향 집의 마당 위의 하늘에 항상 존재를 하고 있듯이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비록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거의 매일 같이 동행을 하고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칠 수 있어도 내가 그 당시 어리니 정확하게 표현을 하기가 힘들고 그리고 한 두 마디 말로 끝날 사실이 아니고 매일 같이 생활을 할 때 각자가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인데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 지식을 아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또 대화 자체가 시비 걸듯이 하여서 네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해도 개의치 않을 테니 나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말로서 대화를 차단을 한 일이 있었다. 더불어 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르고 즉 사람 사는 세계에서 제일로 치는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물론 스님도 스님이 알고 있는 부처님도 그리고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다, 될 수가 없듯이 사람과는 전혀 다른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고 그리고 사람이 죽고 나서 옷이(즉 몸이) 없이 가게 되는 세계에 대한 것이고 나아가 사람 사는 세계에서 제일로 치는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물론 미래에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의 말이 틀리게 되지만, 그 사실만으로는 갈 수가 없는 세계에 대한 것이고 스님은 스님 스스로 알게 된 것과 그리고 오래 전에 먼 곳에서 죽은 스님의 스님이 알게 된 것을 말을 하는 것으로 나와는 경우가 전혀 다르지만 단지 알게 된 것이 몇 마디 말이나 지식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살아 가는 동안 실천을 하는 것이란 관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말을 한 것으로 언제가 스님을 만나면 스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해 보고 스님이 하는 말이 한 두 마디 말로서 끝날 것인지 알아 보란 말을 하고 굳이 내가 스님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은 나의 나이가 어리니 내가 말로 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비록 스님이 부처님이라고 알고 있는 스님이 사람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의 고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스님이, 그 당시에는 천주교니 무당이니 하여 비록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포교의 목적으로 오고 가지만 가뭄에 콩 나는 일이었고 나의 고향 사람들 대부분은 유교인데 유교는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조상에 대한 도의와 예의를 지키는 행위이니 도의와 예의를 나타낸다고 낸 제사와 같은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것과는 별개로 유교 자체가 내가 말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렇다고, 물론 지금 판단을 하는 것이지만, 수 십 년의 목회 활동을 사람들도 표현이 힘든 영역에 대해서 비록 실제적인 현실의 경험이나 체험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어려서 내 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나의 고향 사람들 및 내가 성경(The Bible)이나 성경(The Bible) 속의 내용에 대한 개념 자체가 개념으로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까지의 유교나 불교처럼 인식이나 이해가 되는 것도 전혀 없었으니 사람들이 이해를 하기 쉬운 것으로는 행동이 제일 유사하여 말을 하는 것이란 말을 하니 또 부처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고 나아가 며칠 뒤에 다시 와서 스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하기에 내가 한 말을 잘 되새김질 해보고 내 스스로의 문제로 인한 것이니 그만 말을 하자는 말을 하고 먼 훗날, 나이가 마흔인지 불혹인지 될 때, 내가 책을 쓰게 되면 그 때 읽어 보란 말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한다. 그러니 또 되새김질이란 말이 또 시비 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즉 그 당시 나에게 이런 저런 대화나 언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렇게 살아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은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자신들이 무엇인가 말을 만들고 자신들이 또 무엇인가 언행을 했다는 것에만 초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경우는 내가 느끼는 것과 언어로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여러 번에 걸쳐서 어른들에게도 실제로 예를 통해서 말을 했듯이 내가 그 당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내가 비록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과정 중 느끼고 인지를 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서 답답한데, 그래서 내가 나이 할 말을 하기 위해서 나이 마흔이 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 경우도 있었는데, 그에 반해서 나와 대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 중 한 마디 말이나 표현으로 무엇인가 판단을 하거나 개념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대화 하기를 거부를 한 일이 있었다. 즉 누군가 비록 자신들은 경험과 체험이 없지만 내가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동행을 하고 만나고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는 것을 인정을 할 테니 내가 만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자신이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끔 모습을 알려 달라는 말을 하기에 다른 글들에서 설명을 한 것과 유사한 사유였다. 물론 그 때 나는 그 친구가 스스로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주변에서 계속적으로 어슬렁거리면서 나로부터 내가 만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무엇인가 정보를 캐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그 때 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그림으로 그리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한 것과 유사한 것이었다.

마을 회관 앞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지금에서 안 것이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천사의 모습이라고, 즉 내 안의 나의 모습이라고, 만든 동상 중 멍청하게 한 손 들고 서 있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천사의 모습이라고, 즉 내 안의 나의 모습이라고, 만든 후자의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을 한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다른 글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나의 고향에서의 나의 나이 아마도 10살 이전의 시기에, 즉 아마도 1965년에서 1975년 사이의 시기에, 나와의 대화 중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치를 하고자 하는 누군가와 마을 회관 앞에서 민심이란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나의 고향이 농업과 어업을 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생각 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을 대화로 나눌 때 있었던 일로서 누가 멀리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을 할 때 앞의 주제와 관련이 되는 현상이 있었다. 즉 내가 선 곳에서 바닷가 방향에 서 있는 누군가 방향부터 시작하여 내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볼 때 흰 배가 볼록 나온 귀엽게 생긴 새처럼 생긴 것이 보이고, 그것도 눈 밭 위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보이고, 또 그 때 누군가가 선 그 장소에 배에 달리 호주머니에 똥개와 같이 생긴 것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보여서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얼굴도 또 개와 비슷하게 생겼고 그런데 팔도 개와 비슷하게 생긴 그리고 귀도 개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사람이, 서 있었다. 즉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과 비슷한데 사람은 아니고 개와 비슷한 짐승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나와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한 사람이 왜 자신의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일정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마을 회관 앞에서 나와 대화를 한 누군가에게 내가 서 있던 곳에서 누군가를 지나서 가면 어느 곳이 나오는지 보고, 아마도 캥거루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본 것일 것이지만, 가르쳐 주란 말도 한다. 그곳에 가면 그 사람들의 조상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살지 괜히 사람 사는 마을에 와서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조상들 곁에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란 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의 친척과, 즉 농담으로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어디선가로부터 들려 왔듯이 나의 기원을 조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결혼을 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20070428. 정희득.

화가가, 페인트 공이, 제일 많은 나라 01

누군가가 식물 인간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되었다고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대해서 말을 하는 그리고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내 안의 나의 존재에 대한 말을 하는 내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으로 고치든지 아니면 나를 해치지는 못하니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어릴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과 방식으로 성경과 같은 증거를 하고자 했듯이 나의 나이 마흔이 될 무렵에 나와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다시 나를 통해서 어릴 때의 하고자 한 방식으로 성경에서와 같은 증거를 할 수 있도록 마음이 동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다른 글에서 말을 했듯이 나의 언행과 생활 자체를 통제를 하는 것을 통해서 마치 사회적으로 식물인간이 되는 것과 같게 만들고자 한다면 그 내용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변명과 핑계로서가 아니라 성경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비록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때때로 사람 사는 세상에 성경에서와 같이 기도의 응답이나 은사나 방언과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성경에서와 같은 증거와 증언을 하지만 존재 자체가 그리고 증거 행위 자체가 사람의 존재와는 전혀 별개인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고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내 안의 나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만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이 또 다른 별개의 존재이듯이 비록 내 안의 나가 사람의 영혼과는 존재의 본질이 다르지만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과 비슷한 경우일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2001년 8월의 그 날에 나와 이런 저런 텔레파시나 교통이 가능했던 사람들 중에 만의 하나 질병이 나았거나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나의 존재 자체와는, 즉 성경에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믿음이 믿는 자를 구원했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존재 자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그 때의 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말에도 영(Spirit), 신(Spirit;God), 하늘, 하늘님, 산신, 도깨비라는 말이 비록 종교 관련 기록이 없어도 있듯이 성경(The Bible)이란 말이 들어 간다고 무조건 서양이나 외국이나 특히 미국과 결부를 시키는 습관부터, 터부시 하는 습관부터, 먼저 버리는 것이 사람에 대한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앙인이 쓰는 말 중에 기도에 대한 응답이란 말도 은사를 받는다는 말도 성령을 받는 다는 말도 있고 방언을 한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성경(The Bible)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 그런데 사실일까? 자작극일까? 쑈일까? 다 맞는 말이 될 수가 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은사를, 성령을, 주는 주체가 비록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님, 야훼님, 여호와 하나님, 천사님, 영,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한 하나님의 영(사람의 인지적 관점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God, Jehovah, Yahweh, The Lord God, Angel, Spirit, I AM, God's Spirit(Jesus Christ from the viewpoint of human cognition) 등이라고 말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나타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 특히 위의 경우에는 그런 순간이 예정이 된 것도 아니고 또 짧기도 할 것이니 더욱 더 그럴 것이니, 세 경우 모두가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제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자신의 경우 외에는 확인할 길이 없으니 세 경우 모두 맞을 것이다.

성경에서와 같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세계 및 사람의 사후 세계의 존재를 위한 증거의 사명을 위해서 선택이 된 사람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선지자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처럼 비록 일생에 걸친 경험과 체험과 능력들과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적 본질을 영이라고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눈으로 서로를 보듯이 사람과 사람이 음성으로 귀를 통해서 대화를 하듯이 사람과 사람이 피부로 접촉을 하듯이 그런 경험과 체험이 아니니 또 일정 정도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역적으로 동양이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면서 굳이 성경(The Bible)이 언급이 된 것은 나의 다른 글들을 참조를 하면 알 수가 있겠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즉 영이, 사람이나 사람의 사후 영혼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존재이고 그에 대한 것이 성경(The Bible)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동양이니 대한민국이니 하는 것은 사람의 언어로 만들어진 개념이지 그 언어에 의해서 사람 자체가, 즉 사람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고 또 국가 대 국가의 교류가 많아지고 특히 정보 통신이 발달이 되었으니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졌지만 시대 사로 볼 때 과거에는 조선 시대란 왕의 통치에 의한 국가여서 왕의 명령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니 철저한 신분 계층에 의해서 왕족과 귀족 외에는 삶 자체가 존재를 한다고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그 이후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 및 해방 이후 급변 기를 맞았으니 우리 나라의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겠지만 현실 세계 자체가 그렇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지구 상의 수많은 민족이나 국가 중의 한 민족과 국가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아는 것이 항상 절대 진리니 절대적 사실이니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약 3-40년 전, 그러니까 1970년대 무렵의, 그것도 지금과 같은 영화니 텔레비전이니 하는 것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운 시골에서, 내가 어릴 때 내가 사람들과의 활동 중 사람 및 사람 사는 세상에 있는 것에 대해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한다고 해도 내가 느낀 것을 사람의 언어로 모두 표현을 하기가 힘들 것인데 하물며 존재 자체의 본질이 영으로서 비록 존재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인지 능력 자체만으로는 사람의 눈에 보이거나 사람의 귀로 들리거나 사람이 피부로 접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가끔 내 머리 위에 누군가가 있는지 보라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또 묻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나의 머리 위의 방향에 있어서 내가 볼 수가 없고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 혹시나 나와 같은 경우나 그 당시 다른 대륙에 발생했을지도 모를 나와 같은 경우나 또는 예수나 예수 그리스도나 그리스도 예수의 경우와 같은 경우가 있어서 나에게 나의 머리 위 하늘에 있는 존재를 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런대 대체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간혹 나의 그런 경우를 이용하여 누군가가 나의 두에 서서 장난을 치는 경우는 있었다.

나의 고향에 누군가가 왔기에 인사를 한다고 한 것이 고개가 너무 앞으로 숙여져서 내가 넘어진 경우가 있었다. 다른 글에서 말을 했듯이 나의 고향의 마을 회관 앞에서 일본(공장들) 오스트레일리아(캥거루 때문에) 뉴질랜드(초원) 남극(펭귄) 아르헨티나(천사의 동상과 같은 것) 엔젤 폭포 멕시코(사막과 선인장) 미국(집단과 같은 것(횃불)을 든 동상 및 깃털 꼽고 소 같은 동물 탄 사람들 및 자동차 및 공장 등) 알래스카(채찍으로 개를 학대하는 모습들) 등등을 볼 때나 가끔 누군가가 인류와 관련된 것들을 알고 싶어 할 때처럼 오래 동안 절대적인 왕으로 통치를 한 파라오가 살았던 곳(고향 앞 바다 같은 모래가 많고 모래 위에 무엇인가를 뾰족한 것들이 있고 짐승은 아닌데 짐승과 같이 생긴 것도 있고 등등)을 나의 마루에 앉아서 볼 때나 내가 목이 졸리거나 들리거나 등등의 여타의 경우들처럼 내 몸이 보이지 않고 형체도 없고 잡을 것도 없는 그러나 내가 달리 힘을 쓸 수도 없이 눌린 경우들 중의 한 경우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상황 설명을 드렸는데 잘 이해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진 것은 누군가가 나의 머리 위에 흙으로 무엇인가의 장난을 친 것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믿거나 말거나 이미 다른 글들에서 상세히 설명을 한 것처럼 사람의 표현으로 말을 하면 사용량이나 운동량이 인공 지능처럼 체크가 되고 형성 합금의 속성과 같이 단련이 되지 않는 나의 근육에 기인을 한 것으로 나의 행동이 느리고 그 결과 나의 숨소리 및 반사 신경이 느린 것을 이용하여 그런 장난을 친 것이 그 당시만 해도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나의 만 41년의 삶 동안 누군가로부터 어떤 감언이설에 속고, 즉 예를 들어서 추기경과 같은 종교 관련 직분을 받는 것을 지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기업 분야나 연예인 분야나 학문 분야나 과학 분야나 종교 분야 등등에서의 활동이나 정치 활동에 대한 지원을 받았는지 몰라도 등등, 무슨 특명을 받았는지 몰라도 나의 고향에서부터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동안에 내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고 다시 서울 대학교에 진학을 하는 등등 내가 가는 곳 마다 온갖 형태로, 즉 부모님이니 형이니 동생이니 친척이니 친구니 동료니 지인이니 그리고 심지어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 등으로,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나 나이가 40대인 현재도 나이를 20대나 60대로 말을 하는 것이나 학력을 달리 말을 하는 것 등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2001년 8월의 그 날에 어디선가의 공간에서 들려 왔던 것처럼 누군가는 자신이 한 행동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위의 경우들에 대해서 사진을 보여주고서는, 실제로는 내가 보지도 못하게 스쳐지나 간 후 나의 관찰력을 키운다고 한 것이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하거나 내 뒤에 서서는 자신이 내가 말을 하고자 한 하늘에서 말을 한 존재라고 말을 하고자 한 것과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근래에는 내가 수원시의 이곳 저곳의 도서관에서 지금과 같은 글을 쓰고 또 언론사의 기사에 댓 글을 달 때도 그 내용은 보지 않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별의별 말들을, 유언비어들을, 달리 만들면 별의별 색깔들을, 만들고 입히고 있다. 아주 어릴 때인 시골에서 나에게 내가 말을 하는 것들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서양 및 서양의 종교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사람이 실제로 없었고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용들이, 물론 그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표현이 되지 않았겠지만, 지식과 정보의 공유가 원활한 지금까지도 종교계에서는 논쟁이 되고 있듯이 누군가가 가르쳐서 될 내용이 아닌 것은 약 3-40년 전 그 당시에도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도 몇몇 사람들은 단지 내가 내 스스로 알게 된 사실을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끝까지 외국이나 외국인과 연관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도 단어만, 성경(The Bible)이라는 단어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현상들이 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나와 대화를 할 때는 내가 말을 하는 것 자체를 부정을 하고서는 나중에는 나와의 대화 중에서 언급이 되게 된 말들과 종교에 대한 지식들을 연합하여 자신들만의 말들을 만들어서는 다시 나와 맞붙기 위해서 나타나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서로 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없이 단지 이론에 불과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경우에는 매일 같이 일상 속에서 그 당시의 인류의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는 증거나 증명이 힘들게 존재를 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의, 계속적인 경험과 체험에 의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을 말을 하게 되니 대화를 하면 할수록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할수록 부분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험의 종교란 말이 있듯이 종교 자체가, 즉 주제 자체가,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의,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중요한 것이니 나의 어릴 때 그 당시에도 나의 어릴 때 그 당시에 아는 언어 수준으로 표현을 했듯이 다양하게 응용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래서 상황에 맞게 말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등등의 경우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나오니 그 말로 또 시비를 걸기에 내가 먼저 대화를 차단을 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비록 대체로 보이지는 않았고 나와 두뇌로 머리로 가슴으로 등등 대화가 되는 것으로 또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또는 내가 느낄 수가 있는 것으로, 특히 나에게 다가 왔다가 다시 하늘 멀리 멀어져 가는 것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듯이, 나의 고향 집의 마당 위의 하늘에 항상 존재를 하고 있듯이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비록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거의 매일 같이 동행을 하고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칠 수 있어도 내가 그 당시 어리니 정확하게 표현을 하기가 힘들고 그리고 한 두 마디 말로 끝날 사실이 아니고 매일 같이 생활을 할 때 각자가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인데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 지식을 아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또 대화 자체가 시비 걸듯이 하여서 네가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해도 개의치 않을 테니 나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는 말로서 대화를 차단을 한 일이 있었다. 더불어 나는 사람과는 전혀 다르고 즉 사람 사는 세계에서 제일로 치는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물론 스님도 스님이 알고 있는 부처님도 그리고 사람이란 사람은 모두 다, 될 수가 없듯이 사람과는 전혀 다른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관계에 의한 것이고 그리고 사람이 죽고 나서 옷이(즉 몸이) 없이 가게 되는 세계에 대한 것이고 나아가 사람 사는 세계에서 제일로 치는 왕이나 대통령이라고 해도, 물론 미래에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의 말이 틀리게 되지만, 그 사실만으로는 갈 수가 없는 세계에 대한 것이고 스님은 스님 스스로 알게 된 것과 그리고 오래 전에 먼 곳에서 죽은 스님의 스님이 알게 된 것을 말을 하는 것으로 나와는 경우가 전혀 다르지만 단지 알게 된 것이 몇 마디 말이나 지식으로 끝날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살아 가는 동안 실천을 하는 것이란 관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말을 한 것으로 언제가 스님을 만나면 스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해 보고 스님이 하는 말이 한 두 마디 말로서 끝날 것인지 알아 보란 말을 하고 굳이 내가 스님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은 나의 나이가 어리니 내가 말로 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비록 스님이 부처님이라고 알고 있는 스님이 사람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의 고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스님이, 그 당시에는 천주교니 무당이니 하여 비록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포교의 목적으로 오고 가지만 가뭄에 콩 나는 일이었고 나의 고향 사람들 대부분은 유교인데 유교는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조상에 대한 도의와 예의를 지키는 행위이니 도의와 예의를 나타낸다고 낸 제사와 같은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것과는 별개로 유교 자체가 내가 말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렇다고, 물론 지금 판단을 하는 것이지만, 수 십 년의 목회 활동을 사람들도 표현이 힘든 영역에 대해서 비록 실제적인 현실의 경험이나 체험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어려서 내 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나의 고향 사람들 및 내가 성경(The Bible)이나 성경(The Bible) 속의 내용에 대한 개념 자체가 개념으로서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까지의 유교나 불교처럼 인식이나 이해가 되는 것도 전혀 없었으니 사람들이 이해를 하기 쉬운 것으로는 행동이 제일 유사하여 말을 하는 것이란 말을 하니 또 부처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고 나아가 며칠 뒤에 다시 와서 스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하기에 내가 한 말을 잘 되새김질 해보고 내 스스로의 문제로 인한 것이니 그만 말을 하자는 말을 하고 먼 훗날, 나이가 마흔인지 불혹인지 될 때, 내가 책을 쓰게 되면 그 때 읽어 보란 말을 하기도 하고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한다. 그러니 또 되새김질이란 말이 또 시비 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즉 그 당시 나에게 이런 저런 대화나 언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이 그렇게 살아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은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자신들이 무엇인가 말을 만들고 자신들이 또 무엇인가 언행을 했다는 것에만 초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경우는 내가 느끼는 것과 언어로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한 차이를 여러 번에 걸쳐서 어른들에게도 실제로 예를 통해서 말을 했듯이 내가 그 당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내가 비록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과정 중 느끼고 인지를 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서 답답한데, 그래서 내가 나이 할 말을 하기 위해서 나이 마흔이 될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 경우도 있었는데, 그에 반해서 나와 대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 중 한 마디 말이나 표현으로 무엇인가 판단을 하거나 개념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대화 하기를 거부를 한 일이 있었다. 즉 누군가 비록 자신들은 경험과 체험이 없지만 내가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동행을 하고 만나고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는 것을 인정을 할 테니 내가 만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자신이 그림으로 그릴 수 있게끔 모습을 알려 달라는 말을 하기에 다른 글들에서 설명을 한 것과 유사한 사유였다. 물론 그 때 나는 그 친구가 스스로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주변에서 계속적으로 어슬렁거리면서 나로부터 내가 만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무엇인가 정보를 캐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그 때 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그림으로 그리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한 것과 유사한 것이었다.

마을 회관 앞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지금에서 안 것이지만 자유의 여신상과 천사의 모습이라고, 즉 내 안의 나의 모습이라고, 만든 동상 중 멍청하게 한 손 들고 서 있는 것 보다는 사람들이 천사의 모습이라고, 즉 내 안의 나의 모습이라고, 만든 후자의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을 한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다른 글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나의 고향에서의 나의 나이 아마도 10살 이전의 시기에, 즉 아마도 1965년에서 1975년 사이의 시기에, 나와의 대화 중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치를 하고자 하는 누군가와 마을 회관 앞에서 민심이란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나의 고향이 농업과 어업을 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생각 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을 대화로 나눌 때 있었던 일로서 누가 멀리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말을 할 때 앞의 주제와 관련이 되는 현상이 있었다. 즉 내가 선 곳에서 바닷가 방향에 서 있는 누군가 방향부터 시작하여 내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볼 때 흰 배가 볼록 나온 귀엽게 생긴 새처럼 생긴 것이 보이고, 그것도 눈 밭 위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보이고, 또 그 때 누군가가 선 그 장소에 배에 달리 호주머니에 똥개와 같이 생긴 것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보여서 조금 더 자세히 보니 얼굴도 또 개와 비슷하게 생겼고 그런데 팔도 개와 비슷하게 생긴 그리고 귀도 개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이, 사람이, 서 있었다. 즉 전체적으로 보면 사람과 비슷한데 사람은 아니고 개와 비슷한 짐승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나와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한 사람이 왜 자신의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 일정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래서 마을 회관 앞에서 나와 대화를 한 누군가에게 내가 서 있던 곳에서 누군가를 지나서 가면 어느 곳이 나오는지 보고, 아마도 캥거루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본 것일 것이지만, 가르쳐 주란 말도 한다. 그곳에 가면 그 사람들의 조상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살지 괜히 사람 사는 마을에 와서 사람들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조상들 곁에 가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란 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조상이 짐승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의 친척과, 즉 농담으로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어디선가로부터 들려 왔듯이 나의 기원을 조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결혼을 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20070428.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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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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