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와 경건함과 신령함

비록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대한민국에서는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이라고 합니다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그 사실에 대해서 성경으로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나아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도록 계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즉 존재의 본질이 영(SPIRIT)이시고 존재 및 이동에 있어서 사람들이 말을 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관계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방법에 대한 것을 계명으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사람의 사고나 행위의 산물과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존재 및 영역이 전혀 다르나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세상사 및 인간사와 관련된 것들을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존재 및 영역 또는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사고 및 행위와 연관을 시킴으로서 가끔 많은 죄악들이 잉태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비록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 Spirit; I AM; Lord)의 세계의 능력과 방식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많은 말씀을 전하시어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과 그의 말씀의 본질에 대해서 직접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사람의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통하여 말씀을 하시고 우리들의 일상의 삶과 관련하여서도 옳고 그름에 대한 많고 많은 말씀을 하셨듯이 또 그리스도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모습 속에 계실 때에는 비록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 Spirit; I AM; Lord)의 세계의 능력과 방식으로 많은 기적들을 행하시고 많은 말씀도 하시지만 사람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서는 성경과 그 속의 십계명을 말씀을 하셨듯이 나아가 그의 제자들에게도 영(Spirit)의 능력으로 각각의 능력을 주어 이곳저곳에서 말씀하신 바를 전하게 하셨지만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만들어지는 유형의, 무형의, 것들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들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말씀의 본질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본질 및 영역 및 세계에 대한 것은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천지를 우주의 삼라만상을 창조를 하셨지만 타고난 주어진 능력대로 지구상에서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것도, 물론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듯이 계명에서 말씀을 하셨듯이 죄란 것에서 벗어난 경우를 말을 하지만 각자가 각자의 재능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창조된 의지대로 그리고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늘 조심을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특성 중 하나로서 한 분야에, 한 생각에, 오래 머물다 보면, 특히나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직업병이란 농담 아닌 농담도 있듯이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일정 정도 틀이 형성되고 색깔을 나타내게 되듯이 사람의 일상의 삶 중에서 지나치게 경건함이나 신앙심이란 단어에 열중을 하다보면 오히려 정도가 지나치게 되어 과거에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같은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믿음과 신앙생활을 결과론적으로는 부정하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강한 경건함이나 신앙심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수가 사는 사회에서, 때때로 옳고 그름이나 사람 사는 사회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무색해지는 대중심리 군중심리란 무서운 단어가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특히나 나날이 생활 방식이나 양식이 생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서 복잡다단해져가고 있는 사회에서 경건함이나 신앙심이 타인에게 지나친 모습으로 나타나면 본연의 순수한 의도나 목적과는 달리 죄를 짓게 되는 경우들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여러 가지 생활과 삶이 어려운 여건에서는 이익 추구나 이해관계에 정신과 마음이 잠시 농락당하여 이간질과 농간질에 놀아나게 되어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경우들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의 구원과 타인의 구원을 늘 염두에 두는 삶이겠지만 일정 정도는 죄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경건함이나 신앙심이란 말에 대해서 늘 경계를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조이후 원죄가 있다고 하여 모든 사람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모든 사고와 행위가 죄라는 것도 아니고 모든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그와 같은 같다는 말이 아닐까 싶으며 사람으로서의 이 지구상에서의 삶이 전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며 그래서 여섯 동안은 사람으로서 주어진 능력대로 재능대로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며 제 칠일에는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 위해서 그 결과 생전에 그리고 사후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보이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록 사람으로서 부족하고 때때로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모습도 보이고 또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증거와 말씀의 줄기와 신앙생활의 줄기를 이어내려 오고 있던 유태인 사회에서 그리고 사람의 모습으로는 유태인의 한 사람으로서 약 2,000년 전 사람들의 사람으로서의 한계와 특성과 모습들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되는 상황을 무릅쓰고도 제사장과 서기관과 여타 종교 지도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과 성경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사는 것과는 관련 없이 매일 같이 그리스도 예수님만 외치고 믿고 영접하고 말씀만 묵상하는 신앙생활만 하라고 그렇게 하셨을까요?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사는 것과는 관련 없이 매일 같이 그리스도 예수님만 외치고 믿고 영접하고 말씀만 묵상하는 신앙생활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믿음’이란 말이 그냥 ‘믿습니다.’란 말만하고 하루 24시간 성경만 읽거나 하루 24시간 묵상만 하거나 하루 24시간 기도만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니면 먼 훗날, 이미 약 2,000년 전 이 땅에서의 주어진 사명을 마치시고 이미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에서,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세계에서, 영(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세계에서, 영(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존재로서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 속에 계셨던 영(Spirit;God)의 존재에 대해서, 즉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그 존재와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증거란 목적에 의해서 선지자님들을 비롯한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듯이 지금은 그와 같은 영(Spirit;God)의 존재로서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 속에 계셨던 영(Spirit;God)의 존재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단어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죄인이니 이단이니 하는 단어를 붙여서 심판하고 단죄하라고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이, 구약 신약을 떠난 공통의 주제인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말이, 약 2,000년 전에는 그리고 약 1,000년 전에는 그리고 지금 현재에는 무엇을 의미를 할까요?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고 계명을 지키면 사람이 육체도 있으니 육체로 나타나 보이는 행위로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비록 행위와 겉모습에 지나치게 치중을 하게 되어 믿음이란 마음의 중심을 읽어 버리게 되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는 행위를,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인데 구원은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니 ‘믿는다’, ‘영접한다’, 등등의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요? 계명의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믿음’이란 모습은 빠지고 형식이나 격식으로 나타나게 된 계명의 구절이나 표현이나 행위에만 집착하게 되는 그래서 계명을 지키는 그 궁극적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아가 신앙의 행위가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일 것인데 계명과 행위가 믿음이나 신앙과 반대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각자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위해서 십계명에 있는 죄는 짓는 것은 죄를 짓는다고 생각지도 않고 우리들의 생활환경이나 모습이나 방식의 변화로 나타나는 행위를, 즉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은 행위를, 죄로 분류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요?

십계명에서 말을 하고 있는 계명의 본질을 보면 우리들이 경건함이나 고귀함이나 신앙심이라고 하는 것이 때때로 그 본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으며 심지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오히려 허상과 우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매도당할지 모르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비록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거했던 영(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언제 오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속에 거하셨던 영이 다시 영(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세계로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신(THE LORD GOD AND HIS ANGELS;Spirit;I AM;LORD)의 세계의 능력과 방식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그 세계에 대한 그리고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증거의 행위가 세계 각지에서 때때로 이어지게 되는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듯이 기도에 대한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응답도 그런 행위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61203 정 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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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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