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과 진화론 4

(The Theories of Creationism and Evolutionism 4)

부제; Modelling 과 Remodelling 3

Today's English Tips;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In order to enter the arena of politics in Korea what kind of activities, do you think, are required?

In order to enter the poetical arena in Korea what kind of activities, do you think, are required?.

장소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컴퓨터에 따라서, 같은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컴퓨터에 따라서, 웹사이트에 따라서, 문서 작성을 하는 곳이 인터넷의 웹사이트냐 아니면 MS Office 또는 한글과 컴퓨터의 문서 작성 프로그램인가 하는 것에 따라서 동일한 컴퓨터 및 동일한 키보드인데도 키보드를 이용한 글자를 쓰는 작업이 부드럽고 쉬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갑자기 문서 작성을 비롯한 인터넷 사용이나 여타 컴퓨터의 모든 기능이 정지 상태에 있는 경우처럼 그래서 커서(Cursor)도 움직이지 않고 다른 어떤 작업을 할 수가 없을 때처럼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또 부드럽고 쉬울 때도 있다.

웹 하드(webhard)와 같은 곳에서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서 문서 작성 작업을 할 때와, 근래에는 www.msn.com의 hotmail이나 몇몇 은행의 전자 민원 창구에서 문서 작성 작업을 할 때도 일정 정도 마찬가지이지만, www.naver.com이나 www.empas.com이나 www.paran.com이나 www.daum.net 등에서 문서 작성 작업을 할 때의 차이와 같이 동일한 장소 및 동일한 컴퓨터 및 동일한 키보드에서도 키보드를 누르는 것이 부드럽고 쉬울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같은 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에서도 컴퓨터 별로 조금씩 차이가 또 나기도 한다.

동일한 장소 및 동일한 컴퓨터에서 동일한 키보드에서의 문서 작성 작업시의 차이점은 아마도 웹사이트(web site) 프로그래밍 방식이나 웹사이트 운영 방식이나 웹사이트 서버 또는 그 장소의 서버의 용량이아 운영 방식의 차이나 또는 각각의 인터넷 연결 방식 및 속도 등의 차이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What's the difference among web sites, if I feel something hard or easy, when I try to write down something with computer and its keyboard at the same place? Is it the difference caused by programming of each web site? It is caused by each web site's programming method or each web site's operation method or the volume of server or server's operation system or internet connection system or inter connection speed.

동일한 장소 안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대의 컴퓨터 간의 차이점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컴퓨터의 차이점 또는 키보드의 차이점 등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2001년 8월 16일 그 날 몇몇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이 들리기로는 전기에도 힘이 있고 전자에도 힘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유나 목적이 무엇이든 이렇게 저렇게 확인이 되고 증거가 되었겠지만 단순히 체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근육 자체가 더불어 골격 자체가 내가 지금껏 수많은 방식으로 믿거나 말거나 하고 말을 해왔듯이 컴퓨터와 컴퓨터 관련 문서 작성 프로그램 또는 인터넷을 사용한 문서 작성 시 조금씩 차이가 느껴질 수 있도록 그렇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 경제 활동이 가능하나 믿거나 말거나 할 사유나 이유에 의해서 더불어 현재의 과학 수준이나 의학적 능력으로는 결코 알 수 없고 추측도 힘든 상태로, 비유적인 경우를 찾자면 우리가 말을 하는 인공지능처럼, 모든 육체적 활동이나 행위에 대해서 일정 정도 스스로 조절과 제어가 되는 것도 충분히 신(God;Spirit)의 능력에 의해서는, 비록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바랄 때마다 천지창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돈이나 식량이나 여타 물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신체장애자를 정상으로 회복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영향을 받은 사람이 그런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시공을 초월하여 이곳저곳에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God;Spirit)의 능력에 의해서는, 가능한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성경(The Bible)의 창세기 1장을 보면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빛을 낯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 - the first day.”) 하고 말을 시작한다.

성경의 요한복음 1장을 보면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2. He was with God in the beginning. 3. 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하고 말을 시작한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말로서 일어난 자는 말로서 망하고 칼로서 일어난 자는 칼로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성경(The Bible)을 보면 세상이 말로서 시작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성경도 말로서 시작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제 말로서 망하는 것만이 남았을 것인데 그 일들이 가끔 사실을 왜곡하거나 훼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목회자님들을 통해서, 교회의 중직자님들 통해서, 성경을 새로이 해석을 하고 그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을 만들어 내고 또 그런 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새로이 쓰는 것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목회자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고 몇 대째의 신앙은 아니나 그냥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이 교력이 짧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

과거의 우리나라의 문화가 아니고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서 그렇지 사람이 신(God;Spirit)을 만나서, 즉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의 존재와 계명을 믿게 되고 그 계명을 자손 대대로 전하는 과정이 기록이 되어 있고 또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그 전하신 계명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니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과 그의 영(God;Spirit)들에 의한 계속적인 증거와 과정들이, 특히나 선택된 사람들 통해서 나타나는 계속적인 증거의 과정들이, 글로서 기록된 것이고 또 그 계명을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져 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에 대하여 기록을 한 것일 것인데 전적으로 알 수도 없고 비록 부분적으로 알 수가 있다고 해도 경험이나 체험을 한 사람들이 경험이나 체험을 한 정도만 알 수가 있는 것이 영(God;Spirit)의, 즉 신(God;Spirit)의, 존재일 것인데 교력이 짧아서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해도 성경(The Bible)과 관련하여, 요약하면 십계명이 주축이 되는 성경(The Bible)과 관련하여, 정말 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약 2 천 년 전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에 거했던 영(God;Spirit)이 영(God;Spirit)의 세계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세계의 존재 및 그의 말씀에 대해서 증거 하기 위해서 왔을 때보다 더 많은 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말들을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단죄하는 모습들까지 다른 이해관계란 겉옷을 걸치고서 알게 모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유태인의 율법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의 계명을 실제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보다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과 관련하여 세분화된 계명이라고 볼 수가 있다. 사회 규모나 사회 생활 방식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개인의 삶의 지표로서 강조를 하거나 실천을 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가 그에 맞게끔 생활을 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 즉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언행에 대한 잣대와 기준이 되고 더 나아가 신앙심에 대한 잣대와 기준이 되게 되니 신앙심을 강하게 하고 경건하게 한다는 것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Spirit)의 말씀을 어기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을 하게 된 것이 약 2 천 년 전 유태인 사회의 모습이었고 이에 영(God;Spirit)의 세계의 영(God;Spirit)이 거한, 우리 나라 표현으로 빌리면 만신이나 참신에 신(God;Spirit) 들린 또는 신(God;Spirit) 내린,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며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과 계명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영(God;Spirit)의 세계의 영(God;Spirit)의 힘으로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God;Spirit)들의 힘으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기도 한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영(God;Spirit)의 세계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들(God;Spirit)이 함께 할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잡는 시늉을 할 때 무엇인가 만져지는 촉감이 있다고 하면 다른 공간에 있는 육체적인 존재의 촉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면 아무 것도 잡히는 것 없는 허공이 목을 조이고 몸을 든다고 한다면 나아가 손이 플라스틱을 지나갈 때 플라스틱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런 현상들은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근래에는 그런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정말 많은 새로운 말들이나 표현들이 마치 사람을 시험 들게 만들듯이 그리고 성경(The Bible)이 성경(The Bible)을 어기게 만들듯이 더불어 구약과 신약이 마치 다른 것인 것처럼 그렇게 상황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말로서 일어난 자는 말로서 망하고 칼로서 일어난 자는 칼로서 망한다.”는 말을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정말 안타깝다. 이미 산을 만들고도 남을 시간과 사람들일 것인데 “왜” “무엇을” “무엇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말한 세상이 창 살 없는 감옥이라고 말한 것을 비약시키고 창살 없는 교도소라는 말을 핑계로 삼고 그래서 교도소에서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꾸민다고 그것도 몇몇 사람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상이나 사람을 위해서 일들을 도모를 한다고 누군가를 인해전술과 같은 인의 장막을 동원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을 하고 사회적으로 존재를 하지 않는 존재처럼 만들고 대신에 가짜들을 내세워, 그것도 성경의 이스마엘과(육의 자손) 이삭을(약속의 자손) 본인들 기준으로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를 하여, 명품을 능가하는 짝퉁이라는 말로,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말로 등등, 신(God;Spirit)의 존재와 관련된 실질적인 사실들을 정치·경제 ·사회적인 이익관계나 이해관계를 빌미로 신(God;Spirit)의 존재나 신앙에 관심이 많은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속이게 되면서까지 가짜들을 마케팅화 하고 상품화 하면 본인들이 그럴 능력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앞의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것은 우리들의 기존의 지식이나 관습에서 기인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태초에 하나님이 ~” 할 때의 하나님과 “테초에 말씀이 ~ ” 할 때의 말씀은 모두 신(God;Spirit)으로서 영(God;Spirit)의 존재이다. 즉 사람과 같은 형상을 떠나서 존재 자체가 사람과 같이 육체가 있고 영혼이 있고 7~80년의 육체의 수명이 다하면 사후 영혼은 다른 차원 또는 공간의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 및 그 영혼과는 전적으로 다른 영(God;Spirit)의 존재란 것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들리는 것은 “말”만, 즉 “말씀”만, 들리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표현이 되는 것이다. 절대적 존재로서 천지창조를 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고 또 지혜를 지식을 수명을 불치병과 같은 질병을 자연 현상을 등등과 같은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영(God;Spirit)들이, 천사(God;Spirit)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사후 사람의 영혼은 지금까지의 인류의 역사가 증명을 하듯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 교류가 교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God;Spirit)의 존재는 사람의 영혼이 그렇듯이 비록 존재 자체가 사람의 시각으로 보이지 않고 또 육체로 감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나 영(God;Spirit)의 필요에 의하면, 특히나 신(God;Spirit)의 세계와 신(God;Spirit)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필하면, 비록 외형적인 형상만이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또는 여타 현상들로 그 존재를 나타낼 수 있고 각각의 영(God;Spirit)에 따른 능력을 사람들이 인식을 할 수 있게끔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성령을 받았다고 신(God;Spirit)이 존재를 한다고 신(God;Spirit)의 정체성이 사람이나 사람의 사후 사람의 영혼이 아니고 영(God;Spirit)이라고 했다 해서 나아가 신(God;Spirit)을 만났고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고 또 신(God;Spirit)과 신령한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신(God;Spirit)으로부터 영적인 무엇 또는 영(God;Spirit)의 존재가 있다고 하여 천지창조를 한 것을 비웃고, 만물을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일 비웃고, 시공을 초월한 것을 비웃고, 천지전능한 것을 비웃고 등등, 그래서 그렇게 말한 사람들에게 그런 능력들을 나타내 보일 수 있게끔 요구하는 것을 통해서, 즉 그 방식의 하나로 장애나 질병을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는 것이나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이는 것이나 바람을 잠재우는 기적을 보이는 것이나 외국인을 만나 방언의 능력을 보이는 것이나 심령을 관찰하는 능력으로 독심술과 같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나 무에서 유를 창조를 하는 것이나 로또나 복권이나 도박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미래에 일어나 일을 아는 것이나 (여호와) 하나님이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고 영(God;Spirit)의 존재이시니 사람의 먹을 것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나 등등 여타 성경에서 언급된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과 관련된 능력으로 무일푼에서도 먹고 살 수 있고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게 그와 같은 환경이나 여건을 조성 하는 식으로 등등, 괴롭힐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존재 자체와 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아닐까 싶다.

경험이나 체험이 있는 사람도 그 사람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신(God;Spirit)으로부터 선택이 된 것이지 그 사람이 영(God;Spirit)의 존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그 사람의 경험이나 체험 정도만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한 마디 말을 하였다고 하여 이런 저런 시험에 들게 하는 것 자체가 그것도 다른 사람의 삶을 두고 여러 가지 시험에 들게 하는 것 자체가 단지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지 모를 그들의 신앙심이나 신학에 대한 지식이나 교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들 스스로도 이미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행위들을 통해서 성경에 어긋나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고 특히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법률에 어긋나게 된 것은 당연지사이고 너무나 명약관화한 일일 것인데 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God;Spirit)들과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했던 영(God;Spirit)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성경 속에 있는 선지자님들과의, 또는 유태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형상을 또는 그 존재를 또는 여타의 현상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인지를 할 수 있게는 하겠지만 그 존재적 본질상 사람이 인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에게는 그 말만 들리게 된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God;Spirit)들과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했던 영(God;Spirit)에 의해서 선택이 된 경우가 아닌, 즉 신(God;Spirit)에 의해서 선택이 된 경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성경에 있는 기록들이, 즉 글로서 전해져 오는 말씀들이, 전부이니 앞의 말만, 즉 말씀만, 들리게 되는 경우의 말과 뒤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말이, 즉 말씀이, 할 때의 말이 몇몇 사람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이해 관계나 이익 관계에 의한 시시각각의 필요에 따라서, 특히나 각자의 스스로의 삶의 자세가 변화는 것 외에 달리 제도적으로 이룰 것이 없는 철학적·이념적 성향이나 그것에 의한 생각이나 사고의 경색과 치우침에 의해서, 선량한 많은 사람들을 혼돈으로 몰고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왜 그런 현상들이, 즉 동·서·고·금과 남·녀·노·소와 이념을 떠나서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자 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원과 신(God;Spirit)의 존재 및 정체성에 대한 것이 십 수 년에 걸쳐서 또는 수 십 년에 걸쳐서 왜곡과 굴곡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이, 가능할까?

성경이 기록이 특정한 개인의 것은 아니고 특정한 시기의 것은 아니고 특정한 지역의 것만 아니고 오래 기간에 걸쳐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 현상들을 통해서 있었던 일들과 현상들을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천지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창조한 기원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말씀”이라고 말을 하고 있듯이 나아가 내가 나의 경우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 외에 성경의 기록 외의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체험의 현상들이 보여주고 말을 하고 있듯이 우리가 신(God;Spirit)이라고 하는, 즉 절대적 존재라고 하는, 존재의 실체나 정체가 비록 경우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사람에게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인지나 인식이 가능한 여러 현상들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영(Spirit)이라고 하는 즉 사람들이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볼 수 있거나 인식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니고 단지 대체로 들을 수 있고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말이라고 하는 말뿐인 영(Spirit)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존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존재 자체가 사람이나 여타 사물처럼 그렇게 존재를 하지 않고 그렇게 인식이 되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영(Spirit)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이나 마음이란 것이 그 명확한 실체에 대해서 비록 과학적으로 증거나 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람이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자체에 내재를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는 것처럼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영(Spirit)의 경우에는 스스로를 사람이 인식이나 인지를 할 수 있게끔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수 있으니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영(Spirit)의 존재 자체도 일정 정도 유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먼 훗날 사람의 과학 수준으로 사람의 영혼이나, 즉 생령이나, 정신이나 마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 실체를 구분하고 인식이나 인지를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영(Spirit)의 존재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그 존재함을 인식이나 인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세상사의 사람의 일에 관련된 수많은 이익이나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것일지라도 그런 이익이나 이해 관계가 결국 사람의 존재 자체를 위한 것일 것인데 직접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다고, 그것도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다고,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체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더불어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 직·간접적인 믿을까 말까한 현상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정말 소중한 관심 분야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더불어 인해전술을 바탕으로 한 대중 주의로 국가나 민족의 개념 및 이상 사회를 빙자한 철학적 이념으로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전도되고 공존의 개념이 상실되고 목적과 의의를 상실한 조금은 지나친 경우가 아닐까 싶다. 때가 되면 밝혀질 진실로서 우리들이 현재의 인류의 생존과 더불어 알고 있는 사실 자체를 이해 관계나 이익 관계를 앞세워 국가나 민족이나 우리 것이란 말로 과학적 증거나 증명이란 말로 사람이 인지나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인·물질적인 방식이란 말로 단순한 말만의 논리로 부정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지나친 경우가, 그것도 21세기에,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과 같은 경우나 현상으로 볼 때 그리고 비록 이해 관계나 이익 관계가 다르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볼 때 사람의 과학 수준으로 신(God;Spirit)의, 즉 영(God;Spirit)의, 존재 및 정체성을 인지나 인식을 할 수 있는 그 때까지 가기 전에 현재 인류의 위기가 먼저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아멘!

2006년 9월 9일

정 희득

야훼님(여호와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아 있는 전지전능한 지혜와 끊임없는 축복이 늘 함께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Yahweh's(Jehovah, The Lord, God, The Lord God; Spirit) and Jesus Christ's, His Spirit, Living Almighty Wisdom And Inexhaustible Blessings Be Always With You With All My Hearts.

추신)

(갇) 오 마이 (마의) 갇(God, Oh, My, (My) God(Spirit))이란 말이 있다. (로드) 오 마이 (마의) 로드(Lord, Oh, My, (MY) Lord)란 말이 있다. 주님, 나의 주님이란 말이 있다. 갇 트럭(Gut Truck)이란 말도 있고 갇 트럭 드라이브(Gut Truck Driver)란 말도 있다. “주홍글씨”란 말도 있다. 나의 어린 양 그리수도 예수님이란 말도 있고 그리스도 예수님도 영(God;Spirit)의 세계의 영(God;Spirit)이 거하는 하나님이란 말도 있다. 나아가 신(God;Spirit)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말에 대한 대답으로서 “항상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촉감이나 감촉으로 인지를 할 수 있게 존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말소리가 귀로 들릴 수 있게 들리는 것도 아니고 등등 그래서 먼저, 대체로, 느낌(Feel; 필)으로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이 말이 ”성경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시비 거리가 되기도 한 것일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보아도 알 수 있고 그 속에 있는 말로도 알 수 있지만 성경을 읽는 사람이 동행을 하는 경우든 성령이나 영적인 무엇을 받는 경우이든 직접 경험이나 체험을 할 때의 현상을 말을 하는 것인데 순간적으로 잘 못 이해가 된 것일 것이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니 현실이 되기도 한 것일 것이다. )

그래서 “오” “마” “이”에 해당하는 성씨나 이름이 갑자기 신(God;Spirit)으로 둔갑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갑자기 귀족이 된 “로”나 “노”에 해당하는 성씨나 이름이 갑자기 신(God;Spirit)으로 둔갑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Gut Truck Driver가 갑자기 신(God;Spirit)으로 둔갑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에 해당하는 성씨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또 주님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홍”에 해당하는 성씨나 이름이나 또는 글(Girl)에 해당하는 사람이 또는 “씨”에 해당하는 사람이 또 신(God;Spirit)으로 주님으로 둔갑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것도 말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현실일 것이다.

“동물원”을 영어로 하면 “Zoo”가 된다. 발음을 하면 “주”가 된다. 동물원에는, 즉 “Zoo(주)”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다. 호랑이(tiger), 사자(lion), 표범(leopard), 곰(bear), 코끼리(elephant), 사슴(deer), 원숭이(Monkey; the sign of the Monkey(=the 9th of the 12 Earth’s Branches)), 고릴라(Gorilla), 킹콩(King-Kong; 왕이 각양각종의 콩이거나 각양각종의 Bean이 King이란 뜻은 아님), 오리(duck), 새(bird), 물개(해구; fur seal, sea bear), 펭귄(penguin), 지능이 좋은 고래(dolphin), 용맹한 상어(shark) 등등이 있다. 그리고 동물보다 또는 짐승보다 못한 경우라는 비유적인 표현도 이 세상사에는, 의도된 것이든 자연발생적이든, 가끔씩 있다. 그런 별명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또한 수의사를 비롯하여 그 동물들을 먹이고 보살피고 돌보고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소재로 시나 소설을 비롯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성경(The Bible)에는 앞에서 언급한 “주 하나님” “주 나의 하나님” “주 예수님” “주 그리스도 예수님” “나의 주님” “나의 주 하나님” 등등의 표현들이 있다.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언급을 했듯이 사람의 이름이든 상호이든 사자성구이든 사자성어이든 속담이나 격언이든 등등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단어나 말이나 표현 중에서 단순히 “신”이란 말과 연관을 지어서 말을 만들 수 있는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신원”과 “에벤에셀”이란 말을 사용하여 “신이신 “원(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음)”이 영원하다."와 같이 말을 만들 수도 있고 “김”자 “영”자 “신”자로 말 짓기를 하면 “김(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음)이 영원한 신이다.” 또는 “김(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음)이 영락없이 신들린 경우와 같다.”라고 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가 마친 그런 것처럼 연기나 배역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수원(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음)”이 마치 “신”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신”과 “수원”이란 말이 결합된 이름이나 단어나 말이나 여타 표현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자로 시작되는 말 중에 성경에 있는 말로는 “구주”“구세주”“구주 하나님”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 등이 있고 “조”자로 시작되는 말 중에 천지창조를 하신 전지전능한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는 “조물주”가 있고 동일하게 “창”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는 “창조주”가 있고 또 “여”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고 더불어 “하”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는 “하나님”이 있고 나아가 “예”자로 시작하는 말 중에는 “예수님”이 있으며 여타 “전신갑주”를 포함한 다른 경우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또 그에 해당하는 이름이나 성씨나 단어나 말이나 표현을 찾아서 우리들의 생활이나 삶 속에서 “신의 아들(The Son of God)”에 대한 신(God;Spirit)의, 즉 하나님의, 역할을 현실 속의 배우를 찾아서 그에 맞는 역할을 할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맞고 서로가 나아 가야할 바가 맞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매일 같이 힘들고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되면 어떨까? 영화나 드라마 속의 가상적 범죄가 현실로 되는 것일까? 조금 더 말을 하면 영(Spirit)의 세계에서 오신 성령으로 잉태된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에는 영의 세계의 신(God;Spirit)이 몸 안에 거한 경우이니 신(God;Spirit)을 만날 수 없고 신(God;Spirit)과 신령한 교통이나 동행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람의 눈에 나타나 보이는 육체적 존재 자체가 비유적으로 신(God;Spirit)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니 육체에 해당하는 말로 "전신"이 있고 결국 "전"과 "신"과 “전신”에 해당하는 말을 성씨든 이름이든 단어든 표현이든 등등 “신의 아들(The Son of God)”을 위한 "신(God;Spirit)"의, 즉 하나임의, 역할을 할 대상을 찾아서 마치 배우가 영화 속에서 연기를 하듯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생활 속에서 그런 연기를 하게 할 수도 있는 경우가 지구상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신의 아들(The Son of God)”이란 말과 연관을 시켜서 또 이런 저런 말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 “신의 아들(The Son of God)”에 해당하는 현실 속의 사람과 연관을 지어서 이런 저런 “믿거나 말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 등과 같은 말을 하게 될 황당하고 재미있는 말들과 일들을 만들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맞고 서로가 나아 가야할 바가 맞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매일 같이 힘들고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비록 순간이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로, 63억 인구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인생이 관련된, 삶 자체가 연관이 된, 그런 문제들이 바로 앞에서 언급된 경우들과 같이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그냥 하나의 생각이고 하나의 아이디어인 양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현실일까? 가상일까? 신(God;Spirit)이란 존재 자체가 사람의 개념이나 표현으로 분류를 하자면 하늘에, 또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으로 말이 되고 간주를 할 수도 있으니 신(God;Spirit)과 관련된 모든 행위는 하늘의, 또는 다른 차원의, 세계일까? 그래서 사람이 사는 현실 속의 법이나 윤리나 종교나 여타 영향들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을까?

악처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문답법으로 유명한 철학자가 있다. 소크라테스이다. 비록 신(God;Spirit)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고 더불어 국가나 민족을 떠나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서 성경(The Bible)을 말을 하고 있지만 신(God;Spirit)의 존재나 정체성 및 신(God;Spirit)의 세계에 대해서 대화를 할 때 내가 즐겨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다.” “각자가 아는 만큼 알 수 있다.”이다. 영(Spirit)이라는 신(God;Spirit)의 정체에 기인을 하고 비록 생령이 있지만 육체를 가진 사람의 한계에 기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여타의 세상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할 때 즐겨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알기 어렵다.”이다. 신(God;Spirit)이 존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선과 악의 개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비록 세상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정도 밖에 알지 못하나 세상사에 대한 상황 판단을 전혀 못할 정도로 귀가 어둡거나 말귀가 어둡거나 지식이나 지혜나 지적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의 일이란 것이 대체로 상황과 연관이 되어 표현이 되는 것이 많고 특히나 사람의 경험이나 체험의 한계가 비록 똑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은 일을 똑 같이 겪어도 달리 감정이나 반응이 나타날 수 있고 특히 표현이 될 수 있는 특성이 있는 것이고 더불어 지금쯤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언급이 된 신(God;Spirit)의 존재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는 비록 성경(The Bible)이 있어서 사람의 지적인 사고 능력으로 충분히 추측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각자의 경험이나 체험 정도만 알 수가 있고 말을 할 수가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와 악처란 것을 모델링(Modelling)하여 특정한 가정의 가정생활에 대해서 그렇게 만드는 것을 시도를 하는 것이 가능한 곳도 아마 지구상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든 “소원성취”이든 “만능해결사”이든 “맥가이버”이든 “영화나 연극과 같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만인이 일상 속 배우가 되기 위한 연습이라는 명분으로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을 흉내 내는 것”이든 등등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일들을 도모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사람의 지지나 도움을 얻기 위해서 기획이나 계획을 하여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가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곳도 아마 지구상 어딘가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 언급된 일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언급될 수 있는 일들이 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거나 요상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 끝, The End, Das Ende -

참고1)

(신발; footgear; footwear; shoes), 신(신명; enthusiasm; excitement; warmth; heart; fervor), 신(申;민속;①(십이지의)the sign of the Monkey(=the 9th of the 12 Earth’s Branches). ②신방(申方). ③신시(申時)), 신(辛;민속;①(십간의)the 8th of the 10 Heaven’s stems. ② 신방(辛方). ③ 신시(辛時)), 신(臣; ①(신하) statesman. ②(임금에게) I; me; Your Majesty’s servant), 신(信; ①(성실) faith; fidelity; sincerity; trust; reliance. ②(소식) news; tidings), 신(腎;①(음경) the penis. ②(신장) the kidney.), 신(scene; 라스트 신, 러브 신, 로맨틱 신), 신(新; new; modern; 현대)

참고2)

크산티페 [Xanthippe, ?~?]

소크라테스의 아내. 아내로서 남편의 언동(言動)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항상 상스러운 말로 욕하는 등 남편을 경멸하여, 악처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악처 노릇에 대해서는 후세사람들의 과장이 심하여 확실하지 않다.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BC 39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묻곤 했다.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아테네 출생. 자기 자신의 ‘혼(魂:psych?)’을 소중히 여겨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자기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는 결국 고발되어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재판 모습과 옥중 및 임종장면은, 제자 플라톤이 쓴 철학적 희곡(플라톤의 대화편) 《에우티프론(Euthyphron)》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등 여러 작품에 자세히 그려졌다. 죽음 앞의 평정청랑(平靜淸朗)한 그의 태도는 중대사에 직면한 철학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그에 관하여 썼고, 우리들은 그 글을 통해서 그를 알 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누구를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는 문제이며, 이것을 철학사상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제자 가운데 가장 걸출한 철학자인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상(像)을 골자로 하고, 여기에 다른 것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의 젊었을 때의 일에 관하여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늙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장에서 아름다운 청소년들을 상대로, 또는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이다(이것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 함). 이와 같은 문답의 주제는 대부분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답은 항상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無知)의 고백을 문답자가 상호간에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때 상대방은 소크라테스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자기는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여기에서 자기의 무지를 폭로당한 사람들은 때로는 소크라테스의 음흉한 수법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참뜻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존재 의미로 부여된 궁극의 근거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그것을 묻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이 근거를 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인 근거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무지의 지), 그것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이 ‘막다른 벽’ 속에 머무는 데 소크라테스의 애지(愛知:철학)가 있다. 그것은 내 자신을 근원부터 질문당하는 곳에 놓아 두는 것이며, 이러한 방법으로 내 자신이 온통 근원에서부터 조명(照明)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두 눈이 튀어나왔으며, 코는 짜부러진 사자코로 그 용모는 추하였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그의 말에 매료되고 그의 내면에 사로잡혔다. 이렇듯 외면과 내면의 이율배반에 그의 존재의 본질이 있다.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묻곤 하였는데,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물음은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초월)에 대한 물음이라는 의미에서 그는 형이상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내면은 근거에 의해 질문당하는 데서 생기는 막다른 벽 안에 끝까지 머무는 애지의 동반자로서만 제시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외부와 내면의 틈을 통해 개시(開示)되는 근원의 문제를 철학적 관심을 중심으로 그 생(生)과 사(死)의 증거를 가지고 정착시킴으로써 서양철학의 무게를 한몸에 짊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참고 3)

★ 세계 3대 악처 ★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3대 악처는,

1. 소크라테스 아내 "크산티페"

2. 욥의 아내 "무명씨"

3. 존 웨슬리의 아내 "몰리 골드호크 바제일" 이라 합니다.

★ 크산티페의 일화 ★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집에 많은 제자들이 찾아 왔다. 항상 많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집에서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늘 소크라테스의 처는 이 일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의 남편에게 항상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의 집을 찾았다. 밤늦은 시간에 아내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소크라테스에서 소리 지르며 이 늦은 시간에 손님을 데려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소리를 버럭 버럭 질러댔다. 제자들과 소크라테스는 쥐 죽은 듯이 듣기만 하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의 아내는 성이 덜 풀렸는지 소리소리 지른 뒤 그릇에 물을 담아 소크라테스의 얼굴에 부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악처 노릇에 대해서는 후세사람들의 과장이 심하여 확실하지 않다.

★ 무명씨의 일화 ★

고통 중에 신음하는 남편을 보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다.

★ 몰리 골드호크 바제일의 일화 ★

47세이던 어느 날 웨슬리는 런던 다리에서 넘어져 다리뼈를 다친다. 그 때 몰리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면서 사업가의 미망인으로 아이가 4명이나 있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 후 4년 만에 웨슬리는 그의 아우에게 "우리의 사랑은 이미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몰리의 죄악상을 나열한다.

- 자기 사무실에서 도둑질하기

- 친구 집으로 초대 못하는 불문율

- 포로나 다름없는 취급

- 상세히 보고하고 외출하기

- 사적서류나 서신 함부로 남에게 공개

- 저속한 비어 사용

- 남들에게 끝없는 중상모략....

한번은 주위사람이 보는데서 남편 웨슬리의 머리채를 움겨 쥐고 찔찔 끌고 다녔다고한다.

역사상 3대 악처를 꼽으라면 욥과 스크라테스, 존 웨슬리 목사의 아내가 꼽히지 않을까 합니다. 욥의 아내는 고통 중에 신음하는 남편을 보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남편을 학대하고 애정을 주지 않아 남편을 젊은 남자들과 어울리게 했습니다. 또 웨슬리의 아내는 남편에게 온 편지를 다 뜯어보기까지 하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편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악처의 남편들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인 인물들이 됐습니다. 욥은 그 아내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를 하나님께 받으면서 신앙의 깊은 세계를 알게 됐고,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학대에 쫓겨 생각하는 세계에 들어갔으며 웨슬리는 그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성공을 자기의 사나운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아내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더 꿇게 됐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승리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 牝鷄之晨(빈계지신) ◈

암컷 빈, 닭 계, 어조사 지, 새벽 신. [출전]《書經》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는 뜻. 여자가 남편을 업신여겨 집안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함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이 할 일인데 암탉(牝鷄)이 수탉 대신 때를 알리는 것은 음양의 이치가 바뀌어 질서가 없어졌다는 뜻이며 예로부터 집이나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았다.

고대 중국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절세미녀 '달기'에게 정신을 빼앗겨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와 포락지형이란 가혹한 형벌로 호사와 포악함이 극에 이르렀다. 마침내 주왕은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크게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은나라도 망하고 만다.

[빈계지신]이란 말은 무왕이 주왕과 싸움을 앞두고 주왕의 죄상을 주나라 장병들에게 알리는 가운데 나온 말인데 주왕이 달기의 치마폭에서 달기의 말만 듣고 국정을 망친 사실을 하나 하나 밝히고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길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고 했다. 그런데 은나라 왕은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팽개쳐버리고 같은 조상을 모시는 백이와 숙제의 후손들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활용의 예 - 우리 속담에서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도 빈계지신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비아냥거릴 때도 이 속담은 동원된다.

야훼님(여호와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아 있는 전지전능한 지혜와 끊임없는 축복이 늘 함께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Yahweh's(Jehovah, The Lord, God, The Lord God; Spirit) and Jesus Christ's, His Spirit, Living Almighty Wisdom And Inexhaustible Blessings Be Always With You With All My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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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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